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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세계인권선언, 그 의미와 현재 ⑬ 제 22 조

사회적 안전망은 필수!


[ 제22조 모든 인간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 그리고 각국의 구조와 자원에 따라서,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불가결한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들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


22조는 세계인권선언의 두 번째 주춧돌로서 23∼27조에서 명시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조항이다. 예를 들어, 선언 22조에서 간단하게 표명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권리' 는 25조에서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와의 사별, 노령 또는 그밖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보장제도로 구체화된다.

22조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모든 사람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누릴 권리로 명시하여 개인의 복지를 사회적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즉, 개인의 복지의 보장은 우리들 누구나가 살아가고 있는 경제, 사회, 문화적 조건에서 파생되는 결과이며 정부는 그 적절한 조건을 모든 시민에게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개인의 복지의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생각은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많은 국제문서에 녹아 있으며, 이는 정부의 행동과 책임의 범주의 편차가 큰 가운데서도 모든 국가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원칙이다. 이러한 의무는 유엔의 모든 회원국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관련 국제규범은 자국민의 복지를 위한 노력과 함께 세계 전반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국제노력에 참여할 의무를 함께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선언과 같은 국제규범에서 받아들여진 보편적 의무가 꼬리를 감추기 쉽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 '각국의 구조와 자원'에 의존한다는 제한점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많은 정부는 자원의 한계를 들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인권으로 인정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미국의 한 고위관리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산타클로스나 줄 수 있는 선물이지, 국가가 보장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열망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권리로 볼 수는 없다"는 말을 하였다. 줄을 서라면 많은 정부가 이러한 주장쪽에 '돈이 없다'는 피켓을 들고 길게 늘어설 것이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많은 정부가 시민·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데에는 거의 경제적 자원이 필요치 않다고 흔히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고문'을 방지하는 것은 정부의 입법조치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방침 이상의 그 무엇이 더 필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무겁고 복잡한 부담이 정부에 주어지기 때문에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즉각적으로 완전히 보장하라는 요구의 근거는 없다고 한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인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입장은 또한 사법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든다. 즉, 권리가 법에 의해 집행될 수 없다면 전혀 권리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이용 불가능한 자원에 대한 청구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보다는 행정적 프로그램의 확립에 달린 문제로 보는 것이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의의

한편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보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자유를 '간섭이 없는 것'으로 해석하며, 국가가 빈곤을 해결하겠다는 식의 명분으로 개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하는 '의도적인 강제'일 뿐이라고 파악한다.

그러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선언에서 명시된 이후 유엔은 모든 인권은 "상호의존적이고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결의안을 거듭 채택하고 재확인해왔다. 어떤 한 권리의 침해는 모든 인권에 대한 위협이 되며,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정치적 권리를 이분법으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은 그러한 위협의 빌미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자유'는 인간이 인간다운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단순히 강제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수준에 머무르는 왜소한 것이 아니다. 자유가 의미가 있으려면 그 자유를 통해 분명히 누릴 수 있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인권의 범주에 넣기 위한 투쟁의 동력이었으며 결국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정치적 인정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권의 역사 속에서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간의 통상적인 이분법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