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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세계인권선언, 그 의미와 현재 ⑨ 제 14·15 조

난민에게 피난처를!


[ 제14조 1. 모든 인간은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또 누릴 권리를 갖는다.
2. 이 권리는, 비정치적 범죄 또는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가 진정한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소추의 경우에는 호소될 수 없다. ]

전통적으로 ‘피난처에 대한 권리’는 피난처를 허용하는 국가의 권리를 의미했다. ‘개인이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발전하게 된 것은 2차 대전 이후였고, 이를 반영한 것이 세계인권선언 제14조다. 하지만 14조는 그야말로 ‘선언’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개인이 정당한 이유로 타국에 피난처를 구하더라도 해당국이 받아들여야 할 법적 의무는 부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에 대한 권리’는 선언 뿐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51년)과 의정서(67년)가 채택돼 현재까지 1백30국이 가입돼 있지만 이 또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난민조약은 △난민에 대한 기본적 권리 보호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는 지역으로 추방송환 금지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91년부터 95년 사이 2백40만 명의 난민 신청자 중 난민 지위를 부여받은 이들은 단지 11%에 그쳤던 것이다. 과거 난민조약 채택에 적극적이었던 서방국가들도 냉전이 종식되자 이제 난민을 받아들이는 일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에 별도움이 못된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이러한 태도변화는 난민 보호원칙의 약화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으로 평가된다.

한편 난민조약은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충분한 우려가 있어 자국을 떠난 사람’만을 난민으로 정의함으로, 경제적 난민은 그 보호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97년 현재 난민 2천2백72만 명(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 집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적 난민이었다.

우리 주변에선 북한 이탈주민들이 난민으로 인정되느냐의 문제가 주 현안이 되고 있다. 탈북자 대부분이 중국 등 다른 국가를 경유해 오는데 그 나라들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거나 강제 송환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에도 북한의 식량 난민 13명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서 죽음의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난민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역시 국제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난민의 자발적인 귀환이나 새로운 국가사회에의 적응을 돕는 일은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난민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무력분쟁, 기아 등에 대해 국제사회가 신속히 대처하지 못한다면 난민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 제15조 1. 모든 인간은 어느 한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갖는다.
2. 아무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않는다. ]

세계가 한 나라이고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 법 아래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굳이 국적이란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여러 국가들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무국적자’란 곧 엄청난 불이익을 의미한다. 투표권과 같은 정치적 권리가 부여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보건·교육 등 국가가 자국민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기본적 서비스들에의 접근 또한 제한된다. 즉, 현대사회에서 국적은 사람들의 정신적·물질적 안녕을 위한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하지만 ‘국적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제15조 역시 14조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국적을 부여할 의무는 부과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이는 국제사회가 국가들로 구성된 만큼 국가의 권리와 개인의 권리가 부딪칠 땐 국가의 권리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또 61년에 만들어진 ‘무국적자 감소에 관한 조약’도 ‘자국 영토 내에서 태어난 이들 중 다른 어떤 나라의 국적에 대한 권리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에겐 국가가 의무적으로 국적을 부여’하도록 명시하고는 있지만 20개에도 못미치는 국가들만이 가입하고 있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국적법이 논란이 돼 왔다. ‘자녀의 국적은 아버지를 따른다’는 조항 때문에 외국인 아버지를 둔 자녀들은 한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로부터 배제돼 왔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6월 국적법이 개정된 법에 따라 과거 10년 동안 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가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