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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시대의 낙인 ‘한총련 대의원’

낮에는 학생회 활동, 밤에는 잠자리 걱정


한총련 대의원 이미성(23/여/동국대 98년 부총학생회장/국어교육학과 4년) 씨는 오랫동안 길러왔던 긴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랐다. 지난 7월 26일 밤 난데없이 나타난 보안수사대원에게 연행돼 끌려가다 주변 식당에 있는 학생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 이후였다. “머리가 기니까 눈에도 잘 띄고, 특히 머리채를 잡아당기면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검찰이 보낸 당선 ‘선물’

이 씨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남해에서 상경, 동국대에 진학했다. 1학년 때는 과학생회에서, 2학년 때는 사범대 풍물패인 ‘아라녀리’(제 갈길을 스스로 가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과학생회에서 매주 아침 8시마다 소모임을 통해 신문읽기, 시사토론 등을 이끌었고, 이 소모임이 널리 알려져서인지 올 4월 부총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까지 되었다. 그러나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됨과 동시에 이 씨의 고된 수배생활은 시작됐다.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동시에 한총련의 당연직 대의원이 됐기 때문이다. 당선 후 제일 먼저 날아온 편지도 6월 10일 “한총련 대의원을 탈퇴하라”는 검찰의 우편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검찰의 통보에도 아랑곳없이 여름농활과 수재복구활동에 다녀오고, 8월엔 통일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29일에도 이 씨는 학생대표이사 자격으로 생활협동조합 이사회에 참석해 학생복지를 위해 생협이익금을 배당하는 문제를 논의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내야 했다. 이 씨는 “그런 와중에도 날이 어두워지면 어디서 자야할지가 걱정돼 온종일 정신집중이 안된다”고 말했다.

한번도 야당을 찍어 본적이 없었던 이 씨의 할아버지는 지난 대통령선거 때 “내년에 김대중 씨가 안되면 또 대학생들 잡혀들어 간다”며 지역(남해) 분위기를 무시한 채 김대중 씨를 찍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 된 할아버지는 수배중인 손녀에게 “너거들은 어쩌냐, 해결 실마리가 있냐?”며 수시로 안부를 묻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왜 학생에게만 칼끝을…”

이 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학생이 동국대에만 5명이다. 아주대는 올해 구속자가 2명(작년 4명), 경기대(수원)는 구속자가 1명, 수배자가 2명이다. 각 학교마다 3-6명 정도가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배중이거나 구속중인 것이다. 보통 각 학교 내 11명의 대의원중 반수 이상이 검․경의 탈퇴공작에 못 이겨 탈퇴했고, 탈퇴하지 않은 학생 가운데 지금도 매일 3-6명 꼴로 연행되고 있다.

이 씨는 검찰의 탈퇴협박을 받을 때 “부모님에 대한 협박이 심리적으로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동국대에서 발행하는 통신글 ‘희망 21’에는 “따져보자. 학생들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권영해보다 더 했겠는가, 박일룡보다 더 했겠는가. 한국 경제를 말아먹고도 재산을 해외도피시켜 미국에 호화별장을 가지고 있는 모 재벌 총수보다 국가에 더 큰 피해를 끼쳤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 '국가안보'의 칼끝은 왜 엉뚱한 학생 대표자들을 향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조계사에선 기약없는 농성이

대학생 수배자들은 이미성 씨와 같이 학교 안팎만을 전전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김영삼정권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자가 된 8명은 "학생운동관련 정치수배 해제, 5기 한총련(97년)의 이적규정 재검토, 6기 한총련(98년) 대의원 검거 중단,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지난 8월 9일부터 서울 조계사에서 기약없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세계인권의 해’를 맞아 인권법을 제정한다는 올해, 학생자치기구의 대표들은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길고긴 밤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