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긴 호흡의 인권운동


지난 1월 21일 저녁, 서울 충정로의 어느 찾기 힘든 교회식당에는 그동안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위해 고민하고, 애써오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모인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이 지지부진했다는 전제하에 모임은 진행되었다. 그래서 왜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 지 의견을 모았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자책과 반성의 시간이었다.

다들 열심히 일하는 인권운동가들인데, 그야말로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일진대, 왜 그렇게 풀이죽어야 하고, 좌절해야하는지 안타까왔다.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고 있는 것이 과연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잘못인가? 물론 아니다.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기발한 방법을 동원했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인권의 신장이란 것이 인권운동의 전략과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신장이란 사회구성원 다수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사회에 인권신장을 가져오는 길은 크게 세가지였다. 그러나 세가지 방법 모두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첫번째는 노력에 비해 효과가 별볼일 없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것이었으며, 마지막 방법은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리는 것이었다.

첫번째 방법은 인권을 탄압하는 당사자들을 설득하거나 압력을 가해 인권탄압을 중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권탄압의 당사자들이 개과천선하고 다시는 그런짓 안하겠다고 나서는 예는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두번째 방법은 인권을 유린하고 무시함으로써 파급되는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실감한 후에야 인권을 보장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서구시민사회에서 인권을 보장하기 까지 얼마나 오랜 역사를 보내야 했는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 다. 마치 IMF위기를 맞은 후에야 비로소 정경유착의 결과가 이런것이구나 하고 실감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인권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계속되는 인권탄압으로 인해 국가적, 사회적 병폐가 축적되어 파국상황을 맞은 다음에야 우리는 아차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고 인권을 보장해야겠다는 사회적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인권탄압의 피해자로 희생되어야 한다.

세번째 방법은 다음세대를 염두에 두고 인권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인권은 교육받은, 사고할 줄 아는 인간의 행동양식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인권보호의 논리보다는 인권탄압이 보편적인 원리이다. 우리가 타고난 천성은 인권탄압이지 인권보호가 아니다. 더욱이 우리 한국인이 살아온 사회, 우리가 길들여진 삶의 방식속에서는 인권보호를 주장하기란 매우 어렵다. 결국 인권운동이란 매우 힘들고, 목표를 달성하는 보람을 맛보기 힘든 작업이다. 따라서 좌절하지 않으려면 숨을 길게 잡고 느긋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야지, 우리가 인권운동을 잘못해서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인권보호란 우리 식성에 맞지 않는 음식과 같다. 우리가 길들여진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풍토에는 잘 적응하기 힘든 개념이다. 우선 인권이란 약육강식, 적자생존, 무한경쟁의 논리에 반하는 것이다. 약한자도 강한자 만큼 대우를 받아야 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들도 이긴 사람들과 동등하게 취급해야한다는 논리다. 성인군자들이나 갖고 있을 관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인권의 논리는 또한 인간이 선과 악, 진리와 오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도 거부한다. 확신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들에게는 잘맞지 않는 옷이다. 지금 우리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권논리는 생소할 뿐이다.

그들은 치열한 적자생존의 논리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일제치하에서, 6·25를 겪으며, 60-70년대의 개발독재의 그늘속에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남을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지금의 신세대들도 인권의식에 있어서는 구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비록 그들의 전세대 만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역시 인권에 대해서 생소할 수 밖에 없는 환경속에서 자라왔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폐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부족한 것도 우리가 인권운동을 잘못해서라기 보다는 우리의 정치사회적 환경때문이다. 이러한 열악한 인권환경이 바뀌지 않고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룻밤에 20여명을 사형에 처해도 눈껌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일 뿐이다. 주변의 인간을 수단과 도구로, 경쟁에서 눌러야할 상대로 생각하도록 강요해온 우리 사회에서 인권이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오히려 감명받아야 한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