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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성명> 영화제 봉쇄조치에 대한 입장


1. 9월 27일부터 열리고 있는 인권영화제가 정부기관의 압력에 의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퀴어영화제는 행사를 전혀 열지 못했고 그 전에 있었던 소형단편영화제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이 행사들이 영화진흥법·음비법·공연법이 정한 사전심의와 공연신고를 마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2. 1996년 10월 4일 헌법재판소가 공윤의 영화 사전심의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검열장치이고 따라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판정으로 인해 96년 7월부터 시행 중이던 영화진흥법은 개정되어야만 했고 음비법 또한 이번 정기국회에 개정안이 상정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헌 판정을 다시 상기하는 것은 영화제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압력조치가 위헌판정이 제도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3. 기왕에 문제가 되었던, 또 10월 1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1차 개정 영화진흥법중 검열장치로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율심의를 감당하는 기구(공윤이 공진협으로 바뀌는 형식적인 변화와는 상관없이)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종국적인 상영금지(음비법에서의 판매·배포·대여·시청제공·상영 등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의기구가 법원의 실정법 위반 여부 판단과 상관없이 '등급부여 보류'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공연법에도 문제는 있다. 공연신고를 하면서 심의필증을 같이 내도록 하고 있고, 신고를 받는 자치단체(시구청)는 심의필증이 없을 경우 공연신고를 처리하지 않는다. (만약 등급부여 보류 조항이 없어진다면 심의필증 첨부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 행사를 강행하려 할 경우 공연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법공연 중지명령'을, 심지어 행사가 열리기도 전에, 내린다. 결국 자율적인 등급분류로 한정되어야 할 심의기구의 종국적인 상영금지 처분(등급보류 판정)과 반드시 심의필증을 첨부하도록 되어 있는 사실상의 '공연허가' 조항으로 형법 등 다른 실정법 위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영화의 상영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4. 문제는 또 있다. 영화진흥법에는 심의기구의 한계를 인정하여 다른 실정법 위반 혐의가 있는 영화에 대해 그 내용을 관계기관(검찰 등)에 통보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개정 음비법도 같은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자율기구의 한계 때문에, 종국적인 상영금지 처분인 등급보류 조치가 없다는 전제 하에, 이런 통보행위는 납득할 수 있는 조치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영화제에 대한 공권력의 압력은 이런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지 않다. 등급보류 조항과 사실상의 공연허가제를 활용하여 행사를 봉쇄할 수 있기 때문에 공윤이 그런 통보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사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찰이나 공안기구가 공연장을 빌려주는 측(영화관, 학교 등)에 대해 행사불허조치를 내릴 것을, 또는 병력을 출동시켜 시위를 벌이면서, 사실상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5. 또 공연법에는 '공연자 등록' 조항이 따로 있는데,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공연신고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등록과정에서도 고의성이 짙은 처리지연 조치가 자행되고 있다. 행정서비스라는 편의제공의 의무가 있는 시구청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심지어는 접수를 받았던 담당자가 행사직전에 출근을 않는 경우도 있다) 등록증 교부를 지연시켜 심의필증 없는 공연신고 시도조차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검열장치를 고집하고 있는 심의 주무부처인 문체부, 법대로를 외치는 지자체, 심의기구의 통보 없이도 직간접 봉쇄작전에 나서는 공권력, 이 삼자의 강력한 연대가 이뤄지는 가운데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나 비디오의 공개가 봉쇄 당하고 있다.

6. 영화계가 이미 제기한 바 있는 심의와 관련한 대안은 이렇다. 우선 심의기구에 의한 등급보류는 즉각 철폐되어야 한다. 자율기구에 의한 자발적이며 권고적인 심의가 아니라, 사실상의 검열장치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18세 이상 관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영화 및 비디오물 상영은 등급분류에서 예외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형법 등 다른 실정법 위반에 대해서는 문체부나 심의기구가 아니라 본래 그 책임을 맡고 있는 경찰이나 검찰이 독자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 검열제도를 종식시키고 당당한 공권력을 회복시킬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7. 우리는 각 기관의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아울러 부당한 조치에 대해서는 끝까지 맞설 것이다. 또 헌법재판소 위헌판결의 귀중한 정신이 영화진흥법 등에 반영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력할 것이다.

제2회 인권영화제 집행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