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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제네바 소식 ① 합의와 표결을 둘러싼 공방전


<편집자주>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제53차 유엔인권위 소식을 지은경(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간사) 씨와 이성훈(팍스로마나 사무국장) 씨의 현지 취재로 매주 1회 전합니다.


인권위의 운영방식과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뜨거운 이례적인 논란이 인권위 첫주에 벌어졌다. 먼저 스리랑카 대표는 "결의안 채택과 의사결정이 합의에 의해 이뤄지고, 표결은 예외적인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작년의 결의안(E/CN.4/1996/L.2)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올해에도 이 결의안이 다시 제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서방국가들은 "표결이 유엔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원칙"이라며 "인권이 합의를 명분으로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강조하였다.

한편 대다수의 작고 가난한 남측의 국가들은 심정적, 논리적으로는 같은 남측 국가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실제 표결에서는 그와 반대로 투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는 서방국가를 비판하는 결의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찬성표결을 할 경우, 서방국가의 재정원조 삭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여전히 이스라엘 두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점령 30주년을 맞아 올해 인권위에서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팔레스타인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있었다. 국제인권단체연합(FIDH)은"96년 9월 이스라엘 무장군대와 팔레스타인의 유혈충돌로 64명의 팔레스타인과 15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죽고 약 1천6백명의 팔레스타인이 부상당한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평화협상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당국과 군대에 의한 인권침해가 여전히 감소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두둔하면서 "인권위의 입장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국간의 협상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국정부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발언에서 "평화협상의 결과를 기다린다는 명분으로 인권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서를 지지하였다.

한편 민족자결권과 관련해서, 9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의 조세 라모스 호르타 씨와 카를로스 벨로 주교가 다음주 제네바를 방문할 예정인데, 인도네시아 정부의 반대로 인권위에서 정식으로 연설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인권고등판무관 '도중하차'

호세 아얄라 라소 인권고등판무관이 14일 공식적으로 판무관직을 사직했다. 라소 판무관의 사임이유는 에콰도르 정부의 외무부장관 임명에 따른 것인데, 일부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준비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이로써 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의 주요 쟁점이자 성과로 언급되었던 인권고등판무관 제도는 큰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다시 후임자에 대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고등판무관과 함께 제네바의 유엔 인권센터를 이끌어오던 아브라이마 팔 인권 사무차장보 또한 이번 달에 뉴욕의 유엔 본부로 발령이나, 현재 제네바 유엔 인권센타는 한동안 지도력 공백상태에 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