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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12년전 군의문사, 자살 아니다

국민고충처리위, 허원근 씨 사건 재수사 지시


84년 군복무 도중 의문의 죽음을 당한 허원근(당시 23세) 씨의 사인이 12년만에 밝혀질 것인가? 청와대 직속 국민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최정백)는 28일 허영춘(허원근 씨 아버지) 유가협 의문사지회장에게 보낸 회신을 통해 “관련자료를 검토한 결과, 자살로 단정한 허원근의 사인에는 의문이 많다”며 “사인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국방부의 재조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고충처리위원회는 회신에서 △허원근 씨의 자살동기가 무엇이었는가 △본부중대장 등 중대본부 관계자들이 사고시간, 경위 등을 조작하려고 시도한 이유가 무엇인가 △M16소총의 발사에 의하여 좌우측 흉부가 관통된 충격상태에서 또 다시 스스로 소지중인 소총으로 두부에 격발하는 것이 가능한가 등의 의문사항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한 자살로 단정하는 것은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라 밝혔다.

부산수산대 3년에 재학중 입대한 허 씨는 84년 4월 2일 휴가를 이틀 앞둔 상황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허씨의 시체는 좌우측 가슴과 두부에 총을 맞은 끔찍한 모습이었고, 당시 총성 청취 시각, 탄창 실탄 수 등을 중대장이 조작하려 했음이 소속 헌병대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사건 종결된 바 있다.

아버지 허영춘 씨는 88년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1백35일간 기독교 회관에서 농성을 벌였고, 5공청문회, 국회 탄원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각계의 관심과 노력을 촉구한 바 있다. 허영춘 씨는 지난해 2월 서초동 법원에 민원을 접수하려다 거부당하자, 곧 이어 고충처리위원회에 탄원서를 제출한 결과 이같은 답신을 얻어냈다. 허씨의 가족들은 사인의 정확한 규명 없이는 장례를 치룰 수 없다며 군당국으로부터 사체 인도를 거부해왔으며, 사건 발생 12년 뒤인 지금까지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 왔다.

허영춘 씨는 “광주항쟁 당시 고등학교 3학년으로 데모에 나섰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며 “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허 씨는 “앞으로 모든 의문사 사건을 고충처리위원회 탄원 형식으로 제기해 볼 생각”이라 밝혔다.

현재까지 5공 이후 정권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희생자는 38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군대 내에서 희생당한 사람만 20명인 것으로 유가협측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