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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단체탐방 11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

먼저 일어나 준비하고 함께 하는 진정한 프로 ‘여성노동자’

'프로는 아름답다!'는 글귀 속에서 여성이 일하고 있다. 향수냄새가 넘칠 듯한 안락한 사무실, 당당하다 못해 뽐내는 자세로 아름다운 율동으로 일하는 여성! 그런 여성들은 과연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아니 누가 우리에게 그런 여성을 찾아보기를 강요하는가?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아름다운 율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 본다. 서울에서도 자동차와 굴뚝과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가장 가득한 구로동 한구석에 ‘여성복지회관’이라는 작은 건물이 있다. ‘튼튼이 어린이방’이라는 자그마한 간판이 걸려있는 현관을 들어서면 작은 신발들이 신발장에 가득하고 노랫소리가 콩나물 키재기 하듯 경쾌하게 들려온다. 2층에 올라서면 미니스커트에 핸드폰을 들고 미소짓는 여성이 아니라, 책상마다 스웨터에 청바지를 걸친 사람들이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미소를 지으며 일에 열중하고 있다.

콘트롤데이타, YH, 서통, 세진전자 등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이끌었던 여성노동자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이다. 70-80년대 노동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이었지만 사실상의 폐업과 간부정화조치 이후의 각종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런 외적탄압만이 아니라 결혼과 임신, 육아로 인한 장애도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지속적인 현장참여를 통한 운동을 전개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주체적이고 지속적인 현장에의 참여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상과 건강한 여성문화를 사회적으로 부각시키고자 87년 3월 21일 최초의 여성노동자 운동조직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후 인천(88년), 부천(89), 성남(89), 부산(88), 광주(90), 마산창원(92) 여성노동자회가 차례로 만들어졌고, 각 지역에 기반한 이 조직들이 한데 모여 전국조직인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를 92년 7월 11일 탄생시켰다. 현재 조직은 전국에 3천여 회원이 있고 최고의결기관인 대표자회의(대표 이영순), 서울에 자리한 사무국과 「일하는 여성」편집위원회가 있다. 「일하는 여성」은 91년 5월부터 각 지역의 회보를 통합하여 격월로 공동발간하고 있는 잡지이다. 회원은 직장을 가지고 있는 여성노동자만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여성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회가 주력하고 있는 사업을 크게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고용문제이다. 여성취업의 성격은 들어가서도 힘들지만 일단 들어가기가 힘들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종사해온 섬유, 봉제, 신발, 가발 등의 업종은 산업구조조정으로 말미암아 사양산업화 되었고 그래서 여성들은 점점 영세한 규모의 사업장으로, 서비스산업의 최말단으로 내몰려 왔으며 임시직 노동이 크게 증가해왔다. 이에 여성노동자회는 지역실태조사에 기반하여 매년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노동조합과 연대한 특별위원회의 조직, 대정부정책방안 제출, 여론화 작업 등을 해왔다.

둘째, 직업병과 모성보호문제이다. 90년에 「직업병과 모성보호」를 주제로 사례발표회를 가졌고, 특히 모성보호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그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과 출산휴가 90일을 보장받는 것에 주력하여 현재 어느 정도 결실을 보고 있다.

셋째, 탁아소문제이다. 이 부분은 여성들의 장기적 취업목표를 이루기 위해 절실한 문제이나 국가나 기업의 노력이 아주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여성노동자회는 현재 자체 4개 지역에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탁아소의 확대를 꾀하면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영․육아보육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한 이의제기로 직장탁아소 설치 규정을 강화시킨 바 있으며 현재 제조업, 사무직 노조와 연대하여 ‘직장탁아소 추진 활성화를 위한 연대모임’을 꾸리고 있다.

87년, 88년 노동자대투쟁의 과정 속에서 그 가족들의 조직화, 특히 남성노동자의 부인들의 조직화된 모습은 많은 감동을 준 바 있다. 그 속에서 각 지역 부인들의 조직화 사업의 중요성을 느꼈고 여성복지회관을 통한 교육과 조직화 활동이 일정정도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앞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노동조합이 자기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는 것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가 하나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현재 여성노동자회는 ‘여성의 사회적 평등과 고용안정을 향한 제7차 한국여성노동자대회’를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준비중에 있다. 그리고 내년에 있을 「북경세계여성대회」를 위해 작년 아시아․태평양 NGO 회의에 초청된 바 있는 이영순 대표가 한국준비위에 참여하고 있다. 여성노동자회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여성만의 일도 아니었고 그러기에 여러 관련 단체와 긴밀히 협력하는 가운데서 같이 걸어온 길이었다. 문제의식에 심지를 꽂고 불을 붙이고 그 불을 꺼뜨리지 않고자 같이 걸어온 길은 이 땅의 민주사회 건설과 여성의 권익향상이 맞붙어 있음을 알려온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