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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장의균, 황대권·김성만 씨 사건의 개요

■ 장의균

1951년 3월 12일생(43세). 서강대학교 신방과 졸업.

연행 당시 개마서원(출판사) 경영. 1987년 7월 5일 보안사 송파분실로 연행되어 영장 없이 불법구금상태에서 고문수사를 받다가 1987년 7월 13일 구속됨. 가족으로는 부인과 2남1녀가 있다. 현재 전주교도소에 수감중이며 7년형을 선고받았다.

장의균 씨는 서강대 재학시절 민족사상의 원류를 찾기 위해서는 한국고대사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80년 2월 졸업 후 동년 5월 개마서원을 설립하여 고대사 관련자료를 출판하는 일을 하던 중 1985년 3월경 한국고대사 관계 자료수집과 고대사 연구를 위하여 일본유학을 결심하고 1985년 4월 일본 교토대학 인문학부 한일 고대사 연수생으로 등록하여 유학하던 중 김일우(전 조선신보 기자)와 교류하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만난 박사장(신원미상)이라는 사람의 주선으로 조선상고사에 관한 자료가 풍부한 조선대학(조총련계 재인동포가 주로 다니기는 하지만 민한계 동포도 상당수가 다니고 있음)을 방문하여 상고사에 대한 북한자료를 보고 통일문제에 대하여 교수들과 토론하였다.

장의균 씨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87년 3월 귀국하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에 관여하는 등 활동을 하니까 6 29선언 직후인 87년 7월 5일 영장 없이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불법 연행되었다.

1987년 9월 4일 안기부와 보안사는 "정치권 침투 간첩 장의균 입당 사건"이라는 제목 하에 대대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활동한 것이지 적국을 이롭게 하거나 간첩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의 활동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 사건이 난 1987년 7월은 6월항쟁으로 독재정권이 극도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대중운동이 급격히 고조되어 있어서 이를 탄압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 김성만 황대권

김성만

1956년 10월 10일생.
1981년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1982년 6월 도미 후 동년 8월 16일 미국 웨스턴이리노이대학 대학원 정치학 석사과정.
1984년 11월 10일 독일 괴테어학원 기초독일어과정 수료 후 귀국하여 어학원 강사로 재직 중 1985년 6월 6일 안기부에 강제 연행되어 8월 5일까지 불법강제구금(60일) 상태에서 고문수사를 받음. 현재 광주교도소 수감중이며 1988년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되었다.


황대권

1953년 7월 7일생.
1982년 2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동년 8월 미국 웨스턴일리노이대학 어학과정 수료.
83년 뉴욕 리서치대학원 정치학과 재학 중 1985년 6월 초 방학 중 일시 귀국. 귀국한 날 자택에서 안기부 요원에게 강제 연행되어 8월 5일까지 불법구금상태에서 고문수사를 받음. 현재 안동교도소 수감중이며 무기에서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