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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최소 기준인 근로기준법이 유일한 버팀목인 슬픈 현실

반월시화공단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담벼락교실’시작

지난 11월 12일, 강풍이 매섭게 몰아쳐 사무실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그날, 멀리 안산시청 앞 작은 공간으로 추위를 뚫고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월담이 반월시화공단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담벼락 교실’을 시작했거든요. 첫 번째 강의는 ‘좋다. 법대로 해보자’는 제목으로 노동자가 알아야 할 근로기준법의 주요한 내용을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반월공단의 어느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5명과 시화공단의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1명이 함께 한 작은 교실이었습니다.

많지 않은 인원이었지만, 어색하고 낯선 분위기에서 역시 어색하게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한 뒤, 강의는 시작되었습니다. 대충 봤다고 생각했던 근로기준법이었지만, 강의를 듣다보니 간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노동시간, 연장, 야간, 휴일근로, 임금, 해고, 휴게시간, 취업규칙, 각종수당, 퇴직금 문제 등 노동조건 전반에 걸쳐 사업주가 지켜야 하는 조항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1시간 넘게 이어진 강의와 잘 이해되지 않은 많은 법조항들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갈 때 즈음, 강의는 끝났습니다. 이제 휴식시간이겠거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앞에 앉아있던 노동자가 바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명절때 회사에서 상품권을 선물로 지급하는데, 이것도 임금인지, 임금이라면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가요?”

“종칠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화장실을 가면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데, 나중에 해고사유로 이용하지는 않는 건가요?”

“취업규칙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 하라고 했는데, 회사에 물어보니 사장실 책상에 꽂혀 있으니 보라고 하더라. 이게 별 문제가 없는건가요?”

 

“주야간 교대로 근무하는데 회사에서 수시로 배치를 바꾼다. 낯선 사람들이랑 일해야 하고, 리듬도 깨지는 거라서 많이 힘든데도 회사에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적법한 건가요?”

 

결국 쏟아지는 질문에 휴식시간은 갖지 못한채 2시간을 꽉 채우고 강의는 끝났습니다. 복잡하고 내용도 많다고 생각했던 근로기준법은 사랑방 활동가인 저한테만 그랬던 것 같더군요. 공단 노동자들이 볼 때는 매일 회사에서 부딪히는 일들에 대해 사장이 지켜야 하는 것들로 가득 찬 게 근로기준법이었습니다. 불만이 있어도 상사가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많은 일들이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던 거죠. 그래서 많은 질문들은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적법한 건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근로기준법은 흔히 비판의 대상이었는데, 그것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으니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왠지 서글펐습니다. 이런 느낌이 통한 걸까요? 강사님도 말미에 근로기준법은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최소기준일 뿐이라는 걸 강조했습니다. 노동조합 등을 통한 단체협상으로 얼마든지 더 좋은 조건의 노동조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과 같은 법률도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면 그래서 집단적인 힘을 보여주지 못하면 사업주들은 지키지 않는 게 현실이기도 하구요.

정부나 행정기관이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을 현실로 만드는 것도 노동자들이 뭉칠 때 가능하다는 것이겠죠. 반대로 노동자들이 뭉치지 못해 힘이 없으니 더욱 법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기도 할 테구요. 노동자들이 공장의 담을 넘어 함께 움직이기 위해선 월담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