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의 1심 판결이 있었다. 법원은 국토교통부가 전북 군산 수라갯벌에 추진하던 새만금신공항의 건설 기본계획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새만금신공항 사업의 낮은 경제성, 조류충돌 위험과 환경 파괴 영향 등 종합적으로 침해되는 공익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다고 짚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국책사업을 취소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며, 다른 신공항 추진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되며 주목받고 있다. 판결을 앞둔 9월 8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취소판결 촉구 기자회견에는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더 이상의 희생이 없도록 “잘못된 곳에 잘못 지어진 공항”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만금신공항 판결은 유가족들의 말이 정당함을 확인한 판결이기도 했다. 생명을 위협하는 하늘길이 생기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새도 사람도 죽음으로 내몬 ‘잘못된 공항’
2024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가 추락하여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의 진상이 아직 규명되진 않았지만, 조류충돌로 인한 착륙 장치(랜딩기어) 고장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조류충돌은 ‘예견된 위험’이었다. 무안공항 부지 인근에 철새 도래지는 여섯 곳이나 있고, 특히 겨울철에는 철새들이 서해안을 통해 남하하기 때문에 충돌 위험이 컸다. 무안공항은 착공 초기부터 조류충돌 위험이 수차례 지적됐음에도 무리 없이 추진되었다. 위험은 컸지만, 위험 대비는 허술했다. 작년 사고 당시 무안공항의 조류퇴치 전담 인원은 단 한 명뿐이었고, 조류 탐지 레이더와 열화상 탐지기 같은 시설도 없던 걸로 확인된다. 항공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유도하는 관제사는 국토부의 기준 정원 20명에 한참 못 미치는 7명에 불과했다.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우연하고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잘못된 공항’이 새도 사람도 죽음으로 내몬 참사였다.
새만금신공항 취소 판결은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성찰 위에 있다. 새만금신공항의 사업부지는 철새도래지인 저수지와 강을 포함하고, 조류서식지인 서천갯벌과 광범위한 경작지가 위치해있다. 국토부의 환경영향평가서에는 새만금신공항 부지에서 조류충돌이 연간 최소 9.5회에서 최대 45.9회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적혀있다. 무안공항(0.07회)의 656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런데 국토부는 초기 공항 입지 선정과정에서 조류충돌 위험성에 대한 검토를 누락하였고, 이후 환경영향평가에서도 그 기준을 세 차례나 변경하며 위험성을 축소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의 성명처럼 “가장 확실한 조류충돌 예방책은 조류서식지에 공항을 짓지 않는 것”이다. 재판부는 무안공항 참사를 되짚으며 “항공운항의 안전성”, 나아가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는 새만금신공항은 지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공표했다.
‘지역발전’이라는 거짓말
새만금신공항을 취소해야 하는 이유로 경제적 타당성이 낮다는 것 또한 짚어졌다. 2018년 국토부 사전타당성 검토에서 산출된 새만금신공항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은 0.479였다. 사업비로 1천억을 투자하면 사회적으로 돌아오는 편익이 479억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같은 해 기재부는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수립 용역비를 전액 삭감하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명분으로 2019년 1월 새만금신공항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고, 윤석열 정부는 ‘조기 착공’까지 약속하며 명분 없는 사업은 부활했다. 그 과정에서 사업 추진비가 7534억원에서 7796억원, 최종적으로는 8077억원으로 늘어났다. 뻔히 적자가 예상되던 사업을 멈춰 세우는 판결이 나온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전부터 신공항의 경제적 타당성이 지적되어왔지만,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우고 지역을 살리는 일처럼 포장되면서 신공항은 추진되어왔다.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새만금신공항, 가덕도신공항부터 제주제2공항, 대구경북통합(TK)신공항, 백령공항, 서산공항, 울릉공항, 흑산공항까지 8개의 신공항이 추진 중이며, 경기국제공항과 포천공항은 지자체에서 검토 및 협의 중이다. 그러나 공항이 곧 지역발전이라는 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은 계속 확인되어왔다. 현재 운영 중인 지역공항들이 그 증거다.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 김포, 김해, 제주를 제외한 11개의 지역공항(군산·무안·사천·원주·포항경주·양양·울산·여수·광주·대구·청주)은 매년 적자가 누적되는 ‘유령공항’이 되었다. 2023년 기준 11개 공항의 공항 활주로 이용률이 최소 0.8%(군산)부터 최대 16%(청주)에 불과하며, 한 해 적자액은 총합 1449억원에 육박한다. 김대중 정부 때 성장개발 논리로 추진되었다가 백지화된 김제공항의 경우, 정부가 500억원을 주고 매입한 공항부지는 고작 연간 5천만원만 받는 임대용 농지로 전락했다. 공항을 짓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가꾸어온 농지와 갯벌은 크게 훼손되거나 아예 사라져버렸다.
신공항이 일자리 창출과 교통수단으로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분도 내세워진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공항 노동자의 다수가 인근 지역 주민으로 ‘지역 일자리’의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일자리의 질이다. 지난 10월 1일, 전국 15개 공항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력 부족, 불공정한 계약 관행을 개선하라는 요구로 파업에 나섰다. 한국공항공사는 자회사에 인건비를 시중노임단가의 약 92% 수준으로 지급하고, 결원이 생기면 인건비를 환수하는 결원정산제도로 병가 등의 사용을 제약했다. 올해 1분기 여객과 화물 실적에서 글로벌 톱3에 오른 인천국제공항은 작년 4단계 확장 사업을 진행했다. 면적이 38만7000㎡에서 73만4000㎡로 늘어났고, 여객 수용 능력도 7700만명에서 1억600만명으로 확대됐지만, 인력 충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충원을 약속한 1135명의 1/5에 불과한 241명에 그쳤을 뿐이다. 또 지역공항의 주요 수혜자로 지역 주민을 강조하지만, 공항이 부실하게 운영된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것 또한 지역 주민이다. 무안공항 참사 희생자 179명 중 157명이 광주·전남 지역 주민이었다. 신공항은 지역의 삶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지역이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위험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발전’이란 말은 공허할 뿐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역행하는 ‘정치공항’
신공항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 제기에도 신공항이 계속해서 추진되는 악순환의 중심에는 ‘정치’가 있다. 신공항은 선거 때마다 호출되는 단골 공약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동남권 신공항 공약을 내건 이후, 부지도 적합하지 않고 경제성도 없는 걸로 평가된 가덕도신공항은 2021년 부산재보궐 선거에서 정치경쟁이 격화하며 다시금 건설 추진이 논의되었다. 특히 김경수 경남지사의 ‘부산 메가시티’ 구상에서 가덕도신공항은 단순 지역개발 공약을 넘어 정치인의 국가 비전을 대표하는 상품으로까지 확장됐다. 제주제2공항은 도민의 절반 이상(53.2%)의 반대에도 추진되고 있다(2023년, 한국갤럽). 환경부가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를 2021년 반려시킨 바도 있지만, 제주제2공항의 건설을 강하게 내세웠던 원희룡은 국토부장관의 권한을 이용하여 사업을 철회하지 않았다. 한국의 신공항에 ‘정치 공항’이라는 이름이 붙는 이유다. 공항이라는 치적을 쌓기 위해 예타를 면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형식적으로 처리한다. 가덕도신공항과 TK신공항의 경우처럼, 신공항 건설을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건너뛸 수 있도록 아예 특별법으로 제정하기도 한다.
신공항을 추진하려는 정치는 계속해서 ‘지역 발전’ 논리를 가져오지만, 지금 당장 지역에 필요한 건 신공항이 아니라 병원, 학교, 도서관 등의 필수 인프라다. 올 6월에 발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인천·경기 등의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에 거주 중인 시민 1050명 중 76%가 지역의 의료환경이 수도권에 비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학교는 학생이 줄어 아예 폐교되는 상황에 처하고, 공공도서관은 절반 가량이 수도권에 편중되며 그외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줄줄이 이어진다.
한편에서는 기후위기 시대, 항공산업의 확장이 아닌 감축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개발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뿐 아니라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3%를 차지하는 항공기의 운행까지, 항공산업은 기후위기를 악화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자국 내 단거리 항공 노선 폐지, 신규 활주로와 터미널 건설 중단 등의 노력을 이어가는 가운데, 한국은 실효성 없는 정치적 논리로 신공항을 우후죽순 지으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이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신공항을 멈추는 길 위에 함께하자
새만금신공항 취소 판결은 단지 하나의 신공항을 중단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균형발전’과 ‘경제성’을 앞세우며 반복되어온 개발 신화에 제동을 건 판결이었다. 이 판결은 오래간 새만금 갯벌을 지켜온 지역 주민들의 투쟁, 신공항을 막아 다양한 생명의 공존을 열어내려는 이들의 행진이 맺은 결실이다. 그러나 판결 이후 국토부는 즉각 항소를 제기했고, 전북도도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판결이라며 전담 TF를 구성해 대응하는 중이다. 소송인단은 이번 판결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투쟁을 더 넓히고 있다. 1심 재판부가 소음 직접 피해 여부로 원고를 협소하게 판단한 데 항소하며, 모두의 권리를 위협하는 신공항을 백지화하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여태껏 정치는 ‘공항 건설을 추진하냐 마냐’를 놓고 ‘경제성과 생태보호 중 무엇을 선택하냐’의 문제로 좁혀왔다. 이러한 거짓된 프레임을 넘어서 신공항을 멈춰 세워야만 하는 이유들이 더 크게 이야기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11월 1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는 날에 진상규명, 정보공개, 생명안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린다. 이 싸움들에 함께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하늘길이 아니라, 더 많은 생명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고 외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