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적응한 자로 갱신하였습니다

 

하… 참… 세월 빠르네요. 올해 시월이 되면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한 지 만으로 6년이 된답니다. 사랑방 활동 만 6년이면 뭐다? 안식년을 다녀오게 된다지요. 내년이 오려면 아직 멀었구먼, 웬 설레발인가 싶으시죠?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안식년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사랑방에서 어찌어찌 5년을 살아내고 안식년을 바라보는 자의 소회 정도라고나 할까요? ‘꼬장꼬장’한 사랑방이 좋아서 입방했는데, 실은 그 사랑방이 여간 저를 못살게 굴더라는 거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사랑방을 ‘버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봅니다.

활동 초기, 인권으로 읽는 세상 기획회의를 하면 제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말로 다 못 해요. 주제에 대한 A4 한바닥 정도의 짧은 발제를 하면서 마른침을 얼마나 많이 삼켜댔는지. 단언컨대 제 평생 그 어떤 호러 무비도 저런 신체반응을 이끌어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 회의가 정녕 두려웠나 봐요. 머릿속이 텅 비었다거나 언어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을 자주 느꼈고, 회의에서 나온 의견이나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머리가 하얘져 오늘도 ‘석상’이 되고 말았다고 자조할 정도였죠. 그래서 저는 보통 제가 지어보일 수 있는 오만가지 상을 찌그려 엄살을 부리는 편이었어요. 제가 곤란을 겪는 걸 드러내는 만큼 동료들이 그 곤경으로부터 절 구해줄 거라고 믿는 탓이죠. 정리되지 않은 자기주장이나 생각이 없는 상태가 불안했기에 동료들에 대한 의존도는 커지는 반면 필자가 가질법한 최소한의 책임이나 주인의식은 결여되어 갔던 거 같아요. 제 이름의 글이 쌓이는 동시에 그 글 한편을 쓸 수 있게 도와준 동료들에게 고맙고도 원망스러운 양가감정도 쌓여갔지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는 거예요. ‘잘하고 있지 못하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굳어지는 건 아닐지 초조하고 조급했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자의식도 비대했던 거 같아요.((웃음)) 

저는 이제 조금 사랑방에 ‘적응’한 거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방이라는 조직, 제 동료들도 저에게 적응하고 있고요. 완전한 적응이란 없다는 것, 적응이라는 게 시간이 간다고 절로 획득되는 어떤 상태가 아닌 적극적인 행위라는 것도 함께 배우면서요.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사랑방이라는 조직에 모인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고 사랑방이 하고자 하는 운동과 활동들에 대해서요. 그사이 또 새로운 활동가가 사랑방에 합류했습니다. 제가 이곳에 머무는 한 상호 ‘적응’은 끝나지 않는 생의 과제일 것 같네요. 나름 ‘적응’이라는 걸 해서인지 올해 처음 쓴 인권으로 읽는 세상이 제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만족스러운 글을 썼다는 의미는 (아쉽게도) 아니에요. 그보다는 사랑방의 입장에 대한 주인의식 내지는 책임감이 생긴 거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 기분이 든 순간에 스스로가 덜 미웠고 동료들이 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면 너무 과장일까요? ((웃음))

 

올해 사랑방의 방장이라는 걸 맡게 되었어요. 사랑방의 활동과 운영 등을 두루 살피고 조정하는 역할이에요. 2년 전부터 상임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지요.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라 맡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돋움총회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작년 방장이었던 몽과 재미 삼아 이임식을 했답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절규하며 ‘살려달라’는 저를 동료들이 어르고 달래듯 ‘많이 도와주겠노라’, ‘함께 잘해보자’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동료들 믿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나는 나를 안 믿지만 내 동료들은 믿는다’,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일말의 거짓도 없는 고백이지만 동시에 ‘당신들이 나를 책임지라’는 요청이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 저도 동료들을 책임져야하는 ‘적응한’ 자가 되었네요. 힘들면 손바닥 뒤집듯 ‘나 아직 적응이 덜 됐나 봐’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멀리 있는 안식년 그 너머를 바라볼 여유가 조금 생겼다는 거죠. 그 덕분에 또 조금 갱신된 기분으로 올해를 ‘적응’하며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