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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건설노동자의 목소리가 펜스 안에 갇히지 않도록

양회동 열사 투쟁을 함께 하며 기획했던 건설노조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건설현장에서 쓰이는 다양한 기계장비 중 펌프카를 조종하는 조합원을 만나게 됐다. 지난 5월 양회동 열사의 분신과 사망 소식이 전해진 시기, 또다른 건설현장에서 타설 작업을 준비하던 펌프카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펌프카는 땅에 있었을 텐데, 왜?’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타설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알았다. 기계만을 떠올리며 그 기계를 움직이는 사람의 구체적인 노동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타설은 레미콘에서 펌프카로 옮긴 콘크리트를 펌프카에 달린 붐호스로 쏘아 거푸집을 채우는 작업이다. 몸에 멘 묵직한 리모콘으로 붐호스의 방향과 세기를 조종하는 펌프카 노동자와 그 붐호스를 직접 잡고 옮기면서 콘크리트를 쏘고 평평하게 펴바르는 타설 노동자들이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층이 올라간다. 붐호스가 엄청난 압력과 무게로 콘크리트를 쏘는 만큼 큰 사고로 이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날의 인터뷰를 “기계 뒤에 사람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의 무지를 깨달은 시간으로 다시 떠올려본다.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들리게 하는

분신 51일 만인 6월 21일 양회동 열사를 떠나보냈다.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례 다음날 건설노조 간부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잇달았다. 경찰은 200일 특별단속기간을 50일 더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소환조사를 받고 구속되는 건설노조 조합원의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탄압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로서 ‘숫자’를 주목하게 된다. 건설노조 조합원 중 소환조사를 받은 이들은 계속 늘어나 1200명을 넘었고, 참고인 조사받은 것도 고려하면 수천 명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구속자도 현재 28명으로 늘어났다. 그 숫자에 담기지 않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그 사람이 일구어온 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건설노조 투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인터뷰는 그러한 바람을 담은 작업이다. 이는 앞서 양회동 열사 그리고 건설노조 투쟁에서 인권사회운동은 어떻게 함께 해야 할지 고민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함께 이야기되기도 했다.

“양회동 열사가 돌아가신 이유 중 가장 큰 게 자존감이 무너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건설노조 활동하면서 좋은 일, 필요한 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갈취범 공갈범이 된 것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신 거잖아요. 근데 그런 똑같은 일을 겪고 있는 분들이 천 명이 넘게 있는 거예요. 수사받은 조합원들 긴급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우울과 불안이 큰 상황이에요. 근데 가장 분노하는 게 뭐냐면요, 우리 사회가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고 나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거예요.” 

6월 2일 건설노조와의 간담회 자리, 지금 투쟁에서 중요한 목표가 ‘사회적 명예회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적 명예회복, 그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려본다. 붙박일 수 없는 건설산업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용직과 특수고용노동자로 건설노동자는 자본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쓰고 버리는 ‘폐기물’처럼 취급됐다. 자본의 이해에 발맞추며 국가가 그은 법제도의 한계선 바깥 현장에서 함께 모이고 뭉치고 싸우면서 노동자로서 이름을 되찾고 권리를 짓고 세워온 게 건설노조였다. 그렇게 쌓아온 자긍심을 흔들고 무너뜨리고 있는 게 지금의 탄압이다. 불법과 폭력이라는 프레임으로 노조탄압을 하는 국가와 자본에 맞선 싸움, 이는 물적인 조직체로서 노동조합을 지키는 것 이상의 의미다. 

장례 이후 건설노조는 다시 현장투쟁을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사회적 명예회복’은 인간다운 노동, 안전한 일터를 위해 건설현장에서 원칙과 기준을 만들고 바꿔온 건설노동자들이 그 시간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테다. 6월 14일 인권사회운동단체가 주관했던 문화제 제목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는 이러한 사회적 명예회복이 건설노조만의 몫이 아닌, 사회운동의 몫으로 함께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펜스 안에 다시 가려지지 않도록

어느 날 새롭게 들어선 건물들을 마주하며, 달라진 거리의 풍경이 확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그 건물들이 어떻게 지어지고 올랐는지 펜스 바깥 세상은 몰랐다.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진 것 같던 건물에는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더 빨리 공사를 해야 하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자리했고, 그 안에서 어떻게 일하는가의 문제는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 매일 끊이질 않는 건설현장 사고 소식을 통해서 드러났다.

양회동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국가와 자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열사를 떠나보냈다. 하지만 우리가 당도해야 할 사회적 명예회복이 현재 노조탄압을 자행하는 윤석열 정부에 맞선 싸움으로 한정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건폭’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을 뿐, ‘금품갈취’와 ‘공갈협박’의 굴레로 건설노조를 탄압한 시작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시기로 거슬러간다. 경찰을 비롯해 정부부처 간 합동으로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역할을 해온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는 원칙과 기준을 요구하며 건설현장에 개입하는 건설노조의 영향력을 문제 삼으며 2021년 문재인 정부 시기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양회동 열사 시민사회장 장례위원회에 들어가지 않았다. 노동권을 부정하며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노동자의 편에 서온 보수정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인 장례위에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가 새겨야 할 열사의 뜻이 어떤 것일지 이야기해야 했다. 몇몇 단체들과 함께 <양회동 열사를 보내는 우리의 다짐> 입장을 제안하게 된 배경이다. 

양회동 열사 투쟁을 하면서 건설노동자의 노동이 펜스 바깥 세상에 드러나고 이야기되어왔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이어갈 건설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펜스 안에 가려지지 않도록 수많은 ‘양회동’과 함께 세상을 지어온 여정에 나서겠다는 다짐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