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후원인 인터뷰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을 꿈꾸는

한낱 님을 만났어요

올해 사랑방 30주년 사업을 포함해 언제나 사랑방의 벗으로 함께 해주시는 한낱 님을 만났습니다. 인권운동의 동료로 사랑방 활동가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는 다정한 마음과 함께, 사람들이 좀 더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 한낱 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까요?

친해서 조금 어색하기도 하지만, 사랑방 후원인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랑방의 이웃 단체인 ‘인권교육센터 들’(이하 들)에서 일하다가,
청소년 직접 지원 현장인 ‘청소년자립팸 이상한나라’(이하 자립팸)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정말 오랜만에 새내기 직원으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에서 좌충우돌 모험하고 있는 한낱입니다.

인권운동의 동료로 오래 만났지만 사랑방 후원인이 되신 건 언제인가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들 활동하면서 사랑방을 맨날 드나들고 얼굴을 볼 때는 안 하다가, 2020년 ‘빠듯하지만 뿌듯하게’ 후원인 모집 사업을 할 때 사랑방 후원을 시작했어요. 저는 사랑방 활동을 너무 응원하고 사랑방 활동가들을 다 잘 알지만, 그 중에서도 상임활동가인 어쓰에게 “너 할당량 있지? 나는 네 몫이다!” 했죠. 예전에 어쓰와 청소년인권운동을 함께 했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좋고 그래서 응원을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거든요.

 

얼마 전 열린 인권운동사랑방 30년 후원의 밤 <기꺼이 엮다> 이야기를 먼저 안 할 수 없네요. ‘30주년함께위원회’ 위원(이하 함께위원)으로도 함께 하셨는데, 어떠셨는지 너무 궁금해요.

우선 후원의 밤 ‘바이브’(vibe)가 너무 좋았고요. 20주년 행사와는 체감이 다른데, 물론 20주년도 번듯했지만… 영락없는 집회였고 비가 와서 춥고 차가웠잖아요. ((웃음)) 그런데 30주년에 큰 규모의 번듯한 홀을 빌려서 후원의밤을 하는 날이 오다니, 저는 진심으로 이런 후원의 밤은 30년 뒤에나 다시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웃음)) 그리고 당일 함께위원들과 예전 사랑방 활동가들, 이웃 단체 활동가들처럼 행사를 도우려고 모인 자원활동가들이 있었는데, 그 면면을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당연히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상임활동가들의 합창이었고요. 진짜 미안하지만 기대 안 했거든요. ((웃음)) 그런데 리허설 때부터 본 합창까지, 사랑방 활동가들이 최선을 다해서 연습한 대로 충실히 해내려고 집중하는 표정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주더라구요. 그리고 <수고했어, 오늘도>와 <이 길의 전부>, 도레미송을 개사한 <사랑방 송>까지 선곡이 너무 좋았어요.

 

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죠. 함께위원인 한낱 님과 손희정 님이 중간에 갑자기 난입하는 척(!)하면서 후원의 밤에 오신 분들게 후원을 요청하는 순서가 있었잖아요. 나중에 사랑방 후원계좌를 보니 딱 그 순간에만 50여 명을 넘는 분들이 350여만 원을 후원해주셨어요.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짜릿했어요. 저도 손희정 님도 후원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왜냐하면 함께위원들이 공모해서 만든 순서였잖아요. 사랑방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후원했다면서 핸드폰 불빛의 물결을 보여주니, 함께위원들이 예견했던 대로 잘 풀려서 정말 좋았죠.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활동가인 소리 님도 ‘후원의 밤에 왔는데 후원을 더 보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에 같이 이 자리를 채운 사람들이 조금만 더 해보자고 이야기하니까 ‘아, 입금해야겠다’ 송금앱을 바로 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후원의 밤을 금요일에 성황리에 마무리해서 그 주 주말 내내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저는 만난 횟수에 비해서 함께위원들에게 정이 확 들었어요. 특히 후원의 밤에 후원을 요청하는 순서가 꼭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저랑 의견이 잘 맞았던 서정민갑 님과요. ((웃음))

 

30주년 사업처럼, 이전에도 사랑방과 함께했던 활동이 있었나요?

사랑방 활동가와 인권활동가대회를 함께 준비하는 식으로 연대활동은 함께 했었죠. 제가 30주년 기념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함께위원 메시지 중 “한 김 식은 활동가들과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고, 느슨하게 일상을 늘어놓던 시간이 그립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는데요. 사랑방 활동가들과는 직접 활동을 하거나 투쟁현장에서 만났다기보다, 사무실에서 함께 밥 먹으면서 나른하고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들을 더 많이 봐왔잖아요. 그래서 사랑방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저의 마음은 사랑방이 해나가고자 하는 활동과 투쟁이 잘됐으면 하는 것도 있지만… 사랑방 활동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올라요. 오르락내리락이 있을지언정 서로 같이 능선을 타고 넘으면서, 너무 힘들지 않게 활동했음 하는 인간적인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너무 고마운 마음이네요. 전 한낱 님이 말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 신기하기도 해요.
한낱 님은 자신의 그런 마음이나 태도를 어디에서 배웠다고 생각하세요? 이전에 활동했던 인권교육센터 들일까요?

안타깝게도 들에서는 그렇게 못했어요.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너 그때 왜 그랬니?’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있잖아요. 제가 자립팸에서 활동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인데, 일종의 성찰이나 반성이죠. 들에서 활동할 때는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고 엄청 툴툴거린 것 같아요. 그런데 저만 힘들었겠어요? 절대 아니잖아요. 제가 좀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몰두해야 하는 일을 맡고 있을 때, 사실 다른 동료들이 같이 지원해주거나 함께 나눠야 하는 일들을 더 맡아서 하고 있잖아요. 힘들 때는 저만 보였는데, 나중에야 ‘동료 활동가들이 날 견뎌줬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들 활동을 그만둔 지 2~3년쯤 후에 뜬금없이 고해성사하듯 사과를 했는데, 들 활동가들이 저를 보면서 지그시 웃어주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동료를 대하는 태도에 가장 영향을 미친 건 자립팸과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이하 엑시트)가 함께 한 탈가정 청소년 지원활동 경험이에요. 자립팸과 엑시트는 ‘협업’이 곧 생존인 공간이었어요. 협업하지 않으면 조직이 유지될 수도 없고 활동가들도 너무 빨리 소진될 수밖에 없는 성격이 커서, 서로 소통하고 살피고 합을 맞추는 과정이 너무 중요했거든요. 다른 동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 일, 네 일 구분 없이’ 일하는 공간이었어요. 독박육아나 독박돌봄처럼 한 사람이 한 사람만 돌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데, 청소년 지원도 마찬가지거든요. 청소년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관계망이 아니라 여러 개가 생기는 게 훨씬 낫고, 활동가들도 혼자서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부담이잖아요. 청소년 삶에서의 최선이 무엇일까를 함께 상의하고 나누는 밀도 높은 과정, 서로의 강점과 취약점을 상호 보완해가는 과정 속에서 지금의 제 관점이나 태도가 많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제가 사랑방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한낱 님과 아는 사이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모든 운동의 시작은 우연과 필연의 어떤 교차점에서 시작하잖아요. 우연한 계기는… 제가 대학 때 학생회 운동을 짧게 했는데, 잘 안 맞았거든요. 방황하던 그 시기에 제일 먼저 페미니즘을 만났고, 어느 페미니즘 문화제에서 제가 랩을 했어요. (인권운동에서 한낱 님의 랩은 꽤 유명하지요 ^^) 그때 우연히 한 친구가 랩 하는 저를 보고 함께 활동해보자며 나중에 연락을 해왔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사범대 부학생회장이었고 당시에는 거의 최초로 ‘청소년인권’을 공약으로 당선된 학생회였거든요. 저의 현재 청소년인권운동 동료들이 당시에 연대체를 꾸려서 다 같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2박 3일 캠프에 갔다가 개굴(전 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실, 현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을 만난 거죠.

시작은 이런 우연한 계기였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선후배 위계가 명확한 저희 학과 학생회 운동이 너무 갑갑했었거든요. 그리고 처음에는 저도 많이 까였어요.((웃음)) 인권캠프에 참여한 청소년 분에게 제가 몇 학년이냐고 물어봤는데 그걸 옆에서 듣던 공현 활동가가 “모든 청소년이 학교에 다니는 건 아니에요.” 하는 거예요. 제가 공현에게 ‘덕분에 많이 배웠다’고 하는데, 그런 계기들을 계속 접하면서 저도 변할 수 있었어요. 저는 처음엔 저보다 나이 많은 활동가들에게 말도 잘 못 놓는 사람이었는데, 청소년인권운동이 권위주의에 가장 민감한 운동, 나이나 학번 등 위계 없이 평등하게 관계 맺는 문화를 가장 앞서서 만들어왔던 운동이었기 때문에 너무 큰 해방감을 느꼈죠. 둘레둘레 하면서 그렇게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08년에 인권교육센터 들이 창립했고, 그해 상근 활동을 제안받으며 함께하게 됐고요.

 

또 이제 막 살림에서 활동을 시작하셨죠. 살림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둘 다 여성주의에 기반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던 한낱 님이 의료와 돌봄 중심으로 협동조합 운동을 하는 살림에서 일한다는 게 다른 동료들에게는 낯선 행보로 보였을 수도 있을 듯 한데요.

앞서 이야기한 엑시트 활동이 청소년 긴급 지원이라면, 자립팸은 집으로 돌아가는 게 대안이 될 수 없는 청소년들에게 최대한 집다운 집을 지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에요. 삶이 늘 긴급해서는 안 되고, 긴급․위기 상황을 넘어서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집이잖아요. 자립팸에서 청소년들이 최대 2년 2개월까지 살 수 있었고, 민법상 계약 연령이 되면 최대한 주거안정성이 높은 공공임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했어요. 제도적 변화가 빨리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최대한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도록 물적․제도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청주넷)을 함께 만들어서 활동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집이 생기면 빨리 안정을 찾고 자기 삶의 궤도로 진입할 줄 알았는데, 한 사람의 삶에서 관계적인 공백이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계속 체감하게 됐어요. 청소년들이 자립팸에 머물 때는 활동가들이나 같이 사는 이들이 있으니까 외로움, 사람이 고픈 문제가 오히려 덜 가시화되죠. 그런데 임대주택은 원룸 형태니까 혼자 살게 되고, 삶에서 계속 고꾸라지는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더라고요. 집과 함께 필요한 게 있는데, 그게 ‘사회서비스’라는 말로는 너무 앙상하다고 느꼈어요. 이들이 정말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에 친구도 이웃도 있어야 하고, 같이 살피는 관계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사회적 돌봄의 문제잖아요. 그래서 어떤 새로운 관계망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이걸 제일 잘하고 있을 것 같은 곳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죠! 한 기관에 국한되지 않고 마을이나 지역사회 차원에서 사회적 실천이 가능한 곳들을 찾다 보니, 제가 조합원이기도 하니까 살림이 눈에 들어왔고요. 살림에 일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갑자기 왜 살림에?’라는 반응을 정말 많이 접하거든요. 그런데 사실 저에게는 굉장히 연결된 흐름이자 서사인 거죠.

 

살림 직원으로 일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주로 하거나 맡고 있는 일은 어떤 건가요?

이미 시작된 사업을 이어받아서 하는 건 ‘건강 이웃’이라는 노년일자리사업이에요. 노년일자리에 참여하는 분들이 건강 체크가 계속 필요한 노년의 지역주민들을 방문해서 혈압혈당 체크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면서 ‘건강 이웃’이 되어주는 방식이죠. 청소년들을 만날 때도 사람에게 가장 큰 위기는 ‘고립’이라고 늘 이야기했었거든요. 사람이 아프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 다음’이 가능해지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와상 상태이거나 집에 있을 수밖에 없는 분들이 섬처럼 고립되지 않을 수 있도록, 선으로 연결하는 일을 이제 막 시작했어요. 또 제가 학점은행제를 통해서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밟고 있어요. 사회복지사의 핵심은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교육에 문제가 너무 많아서 이 과정으로 사회복지사를 탄생시키면 안 된다, 대안적인 돌봄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지만 마침 살림이 하반기에 계획하고 있었던 ‘돌봄 학교’와 ‘돌봄 이야기마당’ 두 가지 활동도 앞두고 있고요.

 

정말 ‘새내기 직원’으로 막 출발한 시기인데, 재밌거나 기대하는 일은 없나요?

이건 혼자 알기 아까워서 알려드려요. ((웃음)) 살림이 코로나 시기 이후 다 함께 운동과 건강습관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건강할 결심 100일의 실천 '함께건강실천단'>을 곧 시작해요. 살림 조합원이나 은평구 지역주민이 아니어도, 혼자서 운동하거나 건강을 돌보기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 혹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건강습관을 키워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어요. 저도 이번 기회에 재미나게 운동할 거리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퀴어 근육 키워>라는 운동모임을 해보려고 해요. 살림의원 가정의학과가 트랜스젠더 인권진료로도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호르몬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트랜스젠더 당사자분들의 경우에 수영장이나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걸 저어하는 맥락들이 있더라구요.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운동을 하지 못하고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분들의 상황을 걱정하는 주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런 분들과 문턱 낮은 운동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에 30분씩 언제든지 뭐든지 각자에게 맞는 운동을 하고, 모임참여자들과 오픈채팅방에서 공유하면서 격려와 응원을 나누는 방식으로요. 가끔 오프라인 번개도 추진해보고요. 살림 카페에 모임 홍보글이 있는데요, 거기 있는 제 번호로 연락주시면 사사삭 연결해드릴게요. 물론 성소수자가 아니라도 성소수자 친화적인 건강관리법을 나누면서 운동하고 싶은 분들은 누구나 들어오실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모임과 오픈채팅방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혐오와 차별은 입장할 수 없고 강퇴입니다. ((웃음)) 

♥함께건강실천단♥ 100일 동안, 이런 모임 어때요? 
https://cafe.daum.net/femihealth/WPXW/13

 

사랑방에서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내년 세월호 10주기를 앞두고 백서 작업도 하고 계시잖아요.

사랑방 어쓰 활동가와 같이 하고 있어요. 세월호 생존학생 분들, 그리고 유가족 형제자매 분들이 보내온 10년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려고 시동을 거는 단계예요. 내년 초에 대중서로 나올 예정고요. 아, 최근에 세월호 생존학생인 유가영 님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라는 책을 냈어요.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책에 대한 반응들이 다시 생존 학생분들에게 응원과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반응도 좋고 독자들의 댓글이 정성스럽게 쫙 달려 있어서 너무 좋더라구요.

 

내년 세월호 10주기에 나오게 될 책도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한국사회에도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너무 잘 내고 싶어요. 작업을 하면서 물리적 시간은 흐르지만 삶의 시간이 물리적 시간과 동일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일본 아카시시(市) 불꽃놀이 육교 압사 참사가 22년 전에 있었는데, 아카시시 참사 유가족분들이 오셔서 세월호․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만난 기사를 읽었어요. 그런데 ‘22년 전에 자신의 시계가 멈춰 있다’는 유가족 분의 말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 분도 자기가 그 이전과 같은 행복을 절대 못 누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고요. 지금 저희가 기록하려고 하는 분들의 시간도 어쩌면 고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 고여 있는 시간을 다시 흐를 수 있게끔 해주는 건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책이 그런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함께 또 차분히 해나가 보아요. (^^) 사랑방이 이제 30주년 사업을 마무리하고 다시 30+1의 시간을 걸어가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사랑방과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일이 있어서 들 회의실에 올 때마다 바로 윗층에 있는 사랑방 사무실에 가잖아요. 그때 제 컨셉은 어슬렁어슬렁, 껄렁껄렁이거든요. “얘들아~” 큰 소리로 인사하고 툭툭 건드리면서 장난치고. 저는 사랑방 사무실에 올라가면 그냥 마음이 편해요. 그렇게 장난치고픈 관계가 저한테는 편한 관계거든요. 저는 언제나 그랬듯이 어슬렁어슬렁, 껄렁껄렁 사랑방 사무실에 놀러갈게요. 반갑게 맞아주세요. 그리고 사랑방 지금처럼 너무 꼬장꼬장하게 활동하지 말아요. MZ 세대들이 안 좋아합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