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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점심 한 끼의 소중함

작년 11월부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들은 재택근무와 오후 출근을 병행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습니다. 편도 한 시간의 출근길이 없어지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으니 효율도 더 나아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질수록 단점도 점점 드러났습니다. 늦잠을 자니 새벽까지 일을 하게 되고, 새벽까지 일을 하니 다시 늦잠을 자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집에 오랜 시간 있게 되다보니 늘어난 공과금과 식비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무실에서 함께 먹는 점심 한 끼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방에는 함께 사무실을 쓰는 단체들과 함께 밥을 지어먹는 전통(?)이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아마도 활동가 수는 더 많고 활동비는 더 적었던 시절,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혼자서 짐작할 뿐입니다. 지금은 점심 한 끼를 같이 먹지만 예전에는 점심과 저녁, 두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고 들었어요. 사랑방 상임활동을 지원하고 입방 절차를 밟으며 기존 구성원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 때, 많은 사람들이 “밥 잘해요?” 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취 경력은 긴데 주머니 사정은 언제나 고만고만해서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밥을 차려먹는 데 익숙했으니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아한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막상 사무실에서 밥을 해보니 혼자, 혹은 두 세 명이 먹는 밥상을 차리는 일과 많으면 열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하는 밥상을 차리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상임활동을 시작한지도 3년 가까이 지나 수십 번의 식사 당번을 해온 지금까지도 저는 여덟 명이 먹을 두부조림에 양파를 한 개 넣어야 할지 두 개 넣어야 할지, 열 한 명이 먹을 된장찌개에 애호박 한 개와 두부 반 모는 너무 적은지 적당한지, 재료와 음식의 양을 잘 가늠하지 못하겠습니다.

△ 2018년 영등포 이사 후 집들이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

게다가 그 전까지 제가 혼자서 차려먹던 밥상은 주로 일품요리였습니다. 번잡하게 늘어놓기도 싫고 정리하기는 더 싫으니, 주로 하나나 두 개의 팬으로 할 수 있는 요리만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차리는 점심은 (명시적인 기준은 당연히 아니지만) 주로 국과 메인 반찬에 서브 반찬이 곁들여지는 모양새입니다. 시간 안에 식사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는 육수를 내며 나물을 데치고, 두부를 부치며 가지를 볶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너무 바쁠 때에는 오전 시간을 홀랑 날려먹어야 하는 밥당번이 그저 귀찮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없어져야 그 소중함을 안다고 했던가요. 코로나19가 확산되며 한 상에서 밥을 먹는 일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큰 그릇에 국과 반찬을 두던 식탁에서 각자 그릇에 덜어 거리를 두고 먹는 식탁으로 바뀌더니, 재택근무가 시작되며 아예 공동 식사가 없어졌습니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사무실에서 먹는, ‘제대로 된 점심 한 끼’에 얼마나 크게 기대어 살아오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간단한 일품요리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다보니 다양한 채소나 영양분을 섭취하기 어려웠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며 하루에 최소 두 끼를 차려먹을 에너지를 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매번 다른 요리를 하기 귀찮아서 한 번에 음식을 대량 만들어두고 돌려가며 먹자니 금방 물려 손이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저녁에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하며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재택근무를 하며 계속 혼자서만 밥을 먹다보니 함께 둘러앉아서 이야기 나누던 식탁을 그리워하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새해가 되고 올 한해를 계획하는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사랑방의 재택근무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무실 공동 점심식사는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막상 공동 식사가 재개되고 저의 식사 당번이 돌아오면 귀찮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하루빨리 다 같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날이 오기를 바라게 됩니다. 오랜만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허둥대더라도, 한창 바쁜 주에 걸린 식사 당번을 바꿔줄 사람을 찾아 헤매더라도, 지금 마음으로는 그조차 반가울 것 같아요. 다시 둘러앉을 점심 밥상을 기대하며, 저는 오늘도 혼자 먹을 식사 메뉴를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