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마스크

세주

이번 코로나 유행이 있기 전에는 이렇게 까지 열렬하게 마스크를 써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세먼지 때문에 썼던 정도 였을까? 그 전까지 인터넷 기사에서 유명인들이 일종의 ‘턱스크’를 하고 찍힌 사진을 보면서 의아해 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해서…) 요즘 TV에서는 출연하는 유명인은 마스크를 안 쓰고 관객들은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헛웃음이 잠깐 나왔었다. 이와는 별개로 얼마 전 마스크 끈을 구비했는데 (목에 거는) 완전 편하다. 특히 혼자 운전 하는 사람은 ㅎㅎㅎ 그런데 이걸 그냥 아래로 벗으면 마스크 외부에 묻은 병원체가 옷에 묻고 마스크 안쪽 면에는 또 다른 병원체가 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래저래 참 괴롭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렇다고 끈을 한번 써보면 이건 너무 편해서 뺄 수가 없다.

 

디요

TV 드라마를 보다보면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TV속 세상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어떤 불편함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사는데 드라마 속 재현의 세계는 여전히 감염병도 없고, 마스크도 없이 자유롭게 사람을 만난다. 막연하게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러다 정작 TV 속의 사람들도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날이 오면 조금은 당황스러우려나.

 

가원

마스크가 갑갑하다 느꼈는데 쓰는 버릇하니까 어떤 안전함을 느낀다.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는 감각이라기 보다 얼굴을 다드러내지 않는데서 오는 편안함에 가깝다. 언제 어디서든 원치않게 찍힐 수 있는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에게 생긴 감각인가 싶기도 하고 익명일 때 느끼는 자유로움 같기도 하고. 나름 미덕이다.

 

민선

일본의 한 매장에서 직원들이 쓴 ‘스마일 마스크’가 인기를 끌어 판매까지 하게 됐다는 기사를 봤다. 마스크 가운데 웃는 입모양의 이미지가 새겨진 건데, 이 마스크의 열풍을 소개하는 기사 제목은 “화나도 슬퍼도 웃어요”였다. 감정을 감추고 억지로 웃어야 하는 강박을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이라고 한다던데, ‘스마일 마스크’가 돈이 되는 아이템이 됐다는 소식이라니 화나고 슬퍼진다.

 

정록

올 초에 마스크가 없어서 버스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버스기사에게 짜증내고 그 사람 분명 건강염려증일 거라고 했는데, 이제 마스크는 의무가 됐다. 갑자기 그 버스기사한테 좀 미안해진다. 아직도 마스크는 너무 싫다.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전국순회 평등버스를 떠나면서 예쁘게 디자인한 마스크줄을 기념품으로 제작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마스크줄을 처음 사용해봤는데… 너무 편하다! 평등버스 마스크줄이 지역에서 인기가 많아 품귀현상이 일어나서 전량 소진했다. 모두에게 선물할 수 없음이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더 알릴 수 없음이) 슬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