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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박물관

정록

대학 전공 수업으로 ‘박물관학 입문’을 들었었다. 나에게 박물관은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픈 곳이어서 관람자 친화적 박물관에 대한 기획으로 무빙워크를 제안했던 기억이 있다. 2년 전에 유럽 박물관-미술관을 엄청 열심히 돌아다녔었는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예전에 다리 아프다는 건 핑계였고, 그냥 전시작품이 재미가 없었나보다.

어쓰

배낭여행을 다닐 때 방문하는 도시마다 전쟁 박물관이 하나씩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이 도시에 어떤 전쟁이 있었고 어떤 상흔이 남았는지, 재건을 위한 노력은 어떻게 성공하고 또 실패했는지. 크고 작은 내전부터 세계대전까지 수많은 전쟁을 각각의 도시가 겪어온 기록이 비슷한 듯 또 달라서, 이래서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구나 싶었다.

아해

박물관에도 종류가 여럿이다. 자연사박물관, 민속박물관 등 주제에 따라서도 전시 내용에 차이가 있다. 한자로 넓을 박, 물건 물 자를 써서 박물관이라니, 여러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규모가 작더라도 박물관들은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특히 자연사박물관은 거의 살펴보는 편이다.
그런데, 두둥~ (아마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아마도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본 적이 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 라인이 그 포스가 대단했다. 뇌피셜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제 마주하게 하도록 도와주는 곳이 박물관인가 싶었다.

세주

작년이었나. 오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 경주박물관에 간적이 있다. 마침 금령총 금관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화려함에 입이 떡 벌어졌었다. 의외의 이벤트에 당첨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었다. 여행을 하거나 출장이 있을 때 방문지 중에 꼭 넣는 곳이 그 지역 박물관인 것 같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오고 난 후에 박물관 전체를 꼼꼼하게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보다보면 시간이 훌쩍이고 어느새 다리가 아프고. 그래서 약간 겁이 난다. 박물관 뿐 아니라 미술관, 전시관, 기념관 등. ㅜㅜ 마음먹고 계획을 잡아 가지 않는 한 국내에 있는 박물관들도 잘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서울에 있는 ‘관’ 부터라도 꼼꼼하게 가봐야 할 텐데, 한번 새로운 계획을 잡아봐야겠다. (아휴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 ‘관’ 투어는 쉽지 않아….)

디요

눈으로 대상을 감상하는 것에 영 취미가 없다.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들이 어디 박물관, 어떤 전시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했는데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 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해설을 들어도 역사 공부를 하는 느낌이지 이 물건이 왜 전시되어야 하고, 지금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말해주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다. 박물관이 으리으리하기만 하지 말고 조금은 더 친절해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선

‘무료입장’인 박물관에 가면 가급적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무언가라도 사려고 한다.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솟는 달까. 영국박물관은 그걸 깨게 했다. 그때도 박물관 곳곳 기부를 요청하는 팜플렛을 보며 자발적 압박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 본 미이라에 대한 충격은 이내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는 사실에 사그라졌고, 건축물을 그대로 뜯어와 재연해놓고 있는 것을 보자니 이렇게라도 볼 수 있음에 안도해야 하는 걸까 의문이 생겼다. 수탈의 현장을 보고 있는 듯 한 찜찜함에 영국박물관은 빈손으로 나온 내 인생의 첫 박물관으로 기억이 남게 됐다.

생각해보니 난 박물관보다는 박물관이 자리한 풍경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관심이 가는 전시를 보러 가지만, 어디서든 언제든 박물관 밖에 앉아서 가만히 바람을 맞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순간이 제일 좋았다. 몇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프랑스 단추전(전시 제목은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을 보러 갔는데, 전시를 보고 나오니 야외 계단 무대에서 기타를 든 정순용의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 날 오후 화창한 날씨 탁 트인 풍경 가끔씩 부는 바람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 여유로운 마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물론 저녁으로 먹은 삼각지 맛집의 문어숙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