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편지

만두 이야기

작년 6월에 활동가의 편지 코너를 통해 제가 좋아하는 중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써보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요. 뒤늦은 2편을 이번에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소개라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만둣집들을 적어봤는데, 전부 추천하는 가게들이니 기회가 닿으시면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처음부터 만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어떤 종류의 노동인지 손으로는커녕 머리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에도 ‘만두 빚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이 박혀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언젠가 이웃사촌의 집에서 함께 만두를 빚어 먹자며 온 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우리 집에서는 만두는 사 먹는 음식이지 해 먹는 음식이 아니었기에 좀처럼 드문 기회라며 기꺼이 초대에 응했다. 그렇게 남의 집 사방팔방에 밀가루 묻혀가며 열심히 만두를 빚었지만 내가 만든 만두는 모양부터 볼품없었다. 맛도 그랬다. 적어도 당시의 나에겐 정성에 비례하지 않는 배신을 선사한 맛 었달까. 하루 종일 허리 구부리고 앉아 예쁜 모양의 만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두부와 김치가 잔뜩 들어간 한국식 만두의 맛은 기름진 중식을 사랑하던 초등학생에게는 심심한 맛에 불과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만두는 손만 많이 가고, 맛은 보장되지 않는 그저 그런 음식으로 나에게 남아버렸다.

이제는 흔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자취를 하게 되었다. 자취생에게 만두는 하나의 요리라기보다는 그저 늦은 시간 허기를 채우는 냉동식품이다. 만두의 위상이 더욱더 위태로워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지금까지의 만두에 대한 인상을 깨뜨린 만둣집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자취 메이트였던 나의 누나가 이태원에 ‘쟈니스 덤플링’이라는 만둣집이 있는데 엄청 맛있다고 하니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갑자기 웬 만두타령인가 싶었지만 이태원이 가보고 싶었던 나에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이태원 구경에 덤으로 얹은 만둣집 쟈니스 덤플링에선 당시로선 처음 보는 만두를 내놓았다. 하나의 만두에 반은 군만두, 반은 찐만두처럼 생겨서 메뉴 이름도 ‘군만두-반달’이라는 이상하지만 꽤나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닌 만두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를 의심하며 한입 먹었을 때 다시 놀랐다. 내가 알던 온갖 재료가 잘게 갈려 덩어리가 된 소가 들어있는 만두가 아니라 통 새우가 들어있는 만두였다. 한 접시 10개가 나오는 만두를 나와 누나는 각자 한 그릇씩 먹고, 부족하다며 한 그릇을 더시켜먹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렇게 만두 세 그릇을 해치웠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 사이 통 새우가 들어간 냉동만두가 나왔고, 그 냉동만두를 반은 굽고 반은 찌는 방법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파되었다. 결코 같은 맛은 아니겠지만 이제 더 이상 나도 만두를 먹기 위해 이태원까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만두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은 첫 번째 집은 쟈니스 덤플링으로 남아있다. 이때부터 나에게 만두는 냉동식품 고향만두가 아니라 진짜 맛있게 하는 집을 찾아다녀야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요리로 격상된 것이다.

  

홍대 말고, 홍대 주변에는 만둣집이 많다

사랑방이 홍대에 있었고 나는 아직 상임활동가로 입방하지는 않았던 시기였다. 사랑방 덕분에 홍대 일대는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고 그 주변은 만둣집이 천지였다. 나에게 만두가 요리가 된 이후 가장 먼저 나의 발목을 잡아챈 만둣집은 연희동에 위치한 이화원이다. 가격이 비싸서 자주는 못가지만 언제나 흡족하게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중식당으로, 그저 만두가 맛있는 집으로 소개하기에는 아까운 감이 있다. 그럼에도 만두를 생각하며 이화원을 떠올린 이유는 이화원에서 가장 싼 메뉴 중 하나가 군만두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군만두지만 실제 식탁에 올라오는 만두는 구웠다기보다는 튀긴 것에 가까워 보인다. 노릇한 색감에 울룩불룩 기포가 올라온 두꺼운 만두피는 한입 물면 바삭하지만 씹는 순간 부드러운 안쪽의 만두피와 소가 풍미를 가득 채운다. 비싼 중식당에서 가장 싼 메뉴도 결코 허투로 나오지 않는 군만두는 식당의 품격 같은 것이 느껴지기에 이화원에서 꼭 추천하는 메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만두 마니아의 길로 성큼 가까워졌고, 자연스레 나에게는 만두를 함께 먹으러 다니는 친구가 생겼다. 한참 때는 조금 오버하면 “오늘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음식 이름이 아니라 “이품!”과 같은 만둣집 이름을 답하면 대화가 통하는 사이였다. 그 친구와 연남동과 연희동 일대에 만둣집을 하나씩 다니며 서로 어느 집 만두가 더욱 마음에 들었는지 토론을 나누었다. 이품, 오향만두, 하하, 편의방까지 맛있다고 하는 만둣집은 전부 문을 두드렸고 연희동, 연남동을 만둣집 중심으로 지도를 그릴 수 있을 판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또다시 나타난다

처음의 기세는 만두 전국 지도를 그릴 기세였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만둣집을 함께 다니던 친구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심지어 방학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만나도 만두만이 아니라 중식 전체에 질려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기에 사랑방 사무실마저 영등포로 이사를 하고나니 오가며 들리던 만둣집도 이제는 맛집 찾아다니듯 에너지를 쏟아야만 갈 수 있는 가게가 되어버렸다. 나의 만둣집 지도는 연남동 일대를 벗어나지 못하며 중단되어 버렸다.

만둣집 탐방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지만 만두를 애정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누군가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만두는 빼놓지 않고 답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다 얻어걸린 만둣집이 천진포자다. 정독도서관 근처에 갈 일이 생겼다가 일행이 내가 만두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추천해준 가게다. 특히 부추만두는 비건을 하는 사람까지는 무리지만 그래도 육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같이 먹을 수 있는 만두다. 주재료로 계란과 부추만 들어가 단순해 보이지만 먹어보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맛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게다가 사업을 확장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배달 어플을 통해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맛은 직접 가서 먹는 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늦은 시간에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훌륭한 메뉴다.

만두 탐방, 함께 하실 분?

내가 좋아하던 만둣집들을 기억을 중심으로 끄집어내다 보니 아직도 그 가게들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검색을 시작했다. 놀랐다. 내가 한참 열심히 다닌 이후 맛집 소개프로그램에 소개가 된 것을 보고 내 혀가 틀리지 않았구나에 놀랐고, 앞으로 이 가게들을 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놀랐다. 웨이팅이 걱정이 되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두 탐방을 떠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랑방 동료들은 내가 돈가스와 같은 메뉴만 좋아하는 줄 알 텐데이 참에 만두 맛집을 함께 나누며 조만간 만두 먹으러 가지 않겠냐고 말을 건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