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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극도의 자본주의 체험기

연말연시를 홋카이도에서 보냈다. 즐거움에 겨워 모친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자 ‘일베’라는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모친은 (이 시국에) 일본 여행을 떠난 딸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에게 인기 많은 겨울철 관광지인 홋카이도에는 한국인이 눈에 띄지 않았다. 투어 가이드는 진지하게 자신의 이름을 ‘이시국’으로 개명하려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던진다.

이번 여행은 불가피했다. 10년 넘게 쌓은 마일리지를 소멸시키겠다는 항공사의 ‘협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더 먼 나라를 가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일본을 가기엔 또 어중간하게 많은 마일리지 덕분에 귀국길에는 프레스티지석에 앉게 되었다. 생애 처음 있는 일이고 아쉽지만 생애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이번 경험은 해외 출장을 자주 해야 했던 몇 해 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매번 장시간 비행으로 인해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체력이 바닥나기 일쑤였다. 당시 같이 일했던 한 명망가는 그런 나를 딱하게 여겼다. 그는 장시간 비행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체력에 감탄하고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는데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가 그저 타고난 체력 때문에 그 긴 시간 기내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밀리언 마일러라는 그는 늘 비즈니스석을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기내에서 보낸 시간은 '버티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프레스티지석 한 개의 좌석이 차지하는 창문은 총 다섯 개였다. 이코노미석이 한 개 내지는 0.8개의 창문을 세 명 내지 네 명이 나누어 차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프레스티지 손님이 기내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좌석이 180도로 젖혀져 성인이 완전히 누울 자리를 마련하려면 창문 다섯 개는 거뜬히 필요하다. 좌석의 폭은 넓었고 주어진 베개의 쿠션감은 적당하고 뽀송해 얼굴에 닿는 느낌이 포근하기까지 했다. 이코노미 석에도 주어지는 독서 등 외에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개인용 독서등이 있어 어둑한 기내에서 침침하게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상반신 하반신 허리 부분이 분절적으로 조절 가능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말하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상태에서의 비행이었다. 다리를 제대로 펼 수 없는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열 시간은 앉은 자세로 가는 것이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아니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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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류는 일회용이 아니었고 후추와 소금과 같은 것도 앙증맞은 세라믹 용기에 담겨 나왔다. 커트러리는 이코노미석과 다르지 않았는데 짤그랑 짤그랑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히는 소리가 기내를 가득 채웠다. 낯선 풍경이라 여겼는데, 이는 식사로 스테이크가 제공되었기 때문이었다. 미디엄으로 구워진 소고기를 썰기 위해 그야말로 칼질이 필요했고 불가피하게 사치스러운 소음이 발생됐다. 이코노미석에서 먹는 식사는 대개 포크 하나로 거뜬했다는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승무원들은 이코노미석에 비해 더 친절하다 보긴 어렵지만 서비스의 질은 분명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요구하지 않아도 빈 물 잔에 물을 채워준달지, 수시로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는 달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그 순간만큼은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어째서 부자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에게 우쭐해하지 않는다거나 소탈하다는 수식어가 미덕이고 칭찬이 되는지 알게 되었달까. 인간은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나.

레드 와인을 곁들인 스테이크를 마치고 나자 잠이 쏟아졌다.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고 모친이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비행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최대한 프레스티지석의 효능감을 맛보기 위해 좌석을 굳이 180도로 젖혀 더 이상 폭신할 수 없는 베개를 베고 누웠다. 그러나 잠들지 못했다. 기체가 시속 500킬로 전력 질주하는 바람에 생기는 공기저항 소음을 제외하고 기내에는 그 어떤 투덜거림도 허용할 수 없을 지극히 인간적인 안락함이 있었다. 그 속에서 덜 익은 스테이크를 욱여넣은 탓인지 아니면 자신이 누리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고찰이 없는 고상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을 채워서인지 속이 메스꺼워졌다.

뒤척이는 동안 아쉬운 기내 방송이 나왔다. 곧 인천이란다. 승무원이 다가와 몸을 낮추어 시선을 맞추더니 한껏 들뜬 목소리로 편안한 비행되었냐고 묻는다. 그의 미소는 너무 밝고 구김이 없어 그럴 리 없지만 숫제 그런 미소를 타고난 사람처럼 에너지를 하나 쏟지 않는 듯 보였다. 너무 친절하고 고운 말에 나는 그만 “네?”라고 되묻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결국 그는 그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내는 수고를 해주었고 그제야 나는 덕분에 잘 왔다는 인사를 자연스레 건넬 수 있었다.

착륙 방송이 나온다. 대개 이코노미석에서는 착륙 방송과 동시에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기도 전에 좌석 위 선반에서 자신의 짐을 꺼내려는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내 상황이 몹시 번잡해진다. 그러나 이곳에 앉은 사람들은 착륙 후 안전벨트 사인이 꺼진 뒤에도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신의 짐을 찾고 내릴 때까지 이코노미석 승객은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하물을 찾는 일도 일등이다. 항공사는 수하물에 우선권(Priority) 딱지를 부착해 이들이 일찍 짐을 찾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이 최고라는 말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진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없기 때문에 인간답게 사는 일은 당연하지 않다. 남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내가 누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자본주의 안에서는 가능하다. 없는 사람들에게 동지애와 인간애를 느끼기보다 멸시하고, 있는 자들을 동경하며 그들을 나침반 삼아 살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20석 남짓의 프레스티지석의 창을 확보하기 위해 200명이 넘는 승객은 구겨진 채 여행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그래서 그런 말들을 하나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리는 없고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만이 있을 뿐이라고. 인권운동이 불가피하게도 반자본주의 운동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비로소 와 닿는다. 참 느리게도 깨닫는다. 어지간히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불편을 모르고 살았나 보다. 아 참, 가장 큰 충격은 후식용 포크가 따로 제공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