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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10월 19일 평등행진에 다녀와서

그 날은 우리와 뜻이 다른 사람들의 집회도 있었어요. 최대한 그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마무리 집회 장소에서 딱 마주쳤어요. 그들은 마무리 집회를 하려는 저희를 보더니 굳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저희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냈어요. 그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어요. 박스에 혐오 발언을 적은 사람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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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혐오 발언에 대응하지 않았어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에 대꾸하는 건 에너지 소모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마음에 콕 남더라고요. 평소엔 기억도 안 나다가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그들의 표정, 말투가 스멀스멀 생각나요. 그러면 잠이 안 와요.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말을 기억도 못할 텐데 저만 불쌍하더라고요.

그래서 저의 행복을 위해 이젠 혐오 발언에 조금씩 대응하고 있어요. 평등행진에선 함께 대응했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대응했죠. 때로는 소리쳤고 때로는 음악을 들었고 때로는 춤을 췄죠. 그리고 그들이 혐오 발언을 써놓은 박스 조각을 박살내기도 했죠! 마음이 조금 후련하더라고요.

아직도 평등이라는 단어가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어요. 누군가는 사람을 세포 단위로 쪼개 본인들이 정한 기준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무시하고 비하하고 조롱하죠. 처음엔 그런 반응이 무서워서 저를 숨기고 살았어요. 근데 깨달았어요. 도저히 저를 숨길 수 없어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선 저답게 살아야 해요. 만약 제가 혼자라면 엄두를 내지 못 냈겠죠. 하지만 저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우리 평등의 행진에서 함께 대응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