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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우리가 싸우는 ‘진짜’ 이유를 아시나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드리는 간곡한 부탁-

제가 밀양에 처음 간 것은 작년 1월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하고 나서 제1차 탈핵 희망버스 때입니다. 부끄럽지만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시 전에는 밀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산 꼭대기 현장에 올라가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이렇게 가파른 산 길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포대자루를 들고, 지팡이를 짚으며 오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증언을 고개 숙이고 눈물로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어린이책시민연대라는 곳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엄마들이 많았습니다. 온라인 까페에 밀양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가 올렸는데, ‘설마.. 그런 일이..’라는 마음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눈으로 보고, 직접 귀로 듣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건설용역업체 직원들의 욕설과 폭력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온 몸으로 나무를 끌어안고 울고 불면서 싸운 그 동안의 설움과 외로움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르신들은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머리가 희끗하신 한 할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샀다고 했습니다. 김진숙인가 하는 여자가 트위터가 뭔가 하는 걸로 세상에 자신의 소식을 알렸다는 뉴스를 보고서, 그걸 하면 세상 사람들이 좀 알아줄까 하는 마음에 샀지만 사용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벌목이 된 산비탈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나무를 심고 또 울었습니다. 이 나무를 지키려고 어르신들은 또 얼마나 힘들게 싸워야 할까를 생각하니 도무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마을 어르신들은 큰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굽은 허리를 더 굽혀서 인사를 했습니다. 지난 5월, 다시 공사가 재개되고 할머니들의 벗인 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이토록 처절하게 싸우는 이유를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시나요? 인권활동가들은 인권침해조사단이 꾸려서 밀양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라고요. 목에 밧줄을 묶고, 옷을 벗고, 땅을 파고 싸우는 이유는 그냥 이대로 농사도 짓고 마을 사람들끼리 웃으며 살고 싶기 때문이랍니다. 부모님 산소가 여기에 있고, 평생 여기서 자랐고, 추석이 되면 자식들이 고향을 찾기 때문에, 여기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8년째 한전(놈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수확을 해야 먹고 살텐데, 이렇게 바쁜 시기에 정부와 한전은 다시 공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경찰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시 산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10월 2일부터 공사라지만 전날부터 밧줄을 온 몸에 감고 산속 움막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저도 127번 현장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함께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할머니는 전쟁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잠도 못자고 초조함과 불안함을 이기려 허공에 욕을 내뱉었습니다. “그냥 죽여라, 이 짓을 언제까지 하노, 우리 죽이고 공사해라.‘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몸에 불을 붙였던 이치우 어르신이 생각났습니다. 대책위도, 인권침해감시단도, 언론사 기자들도, 아무도 이 분들을 말릴 수 없습니다. 공사 중단이 아니고서는 이 분들을 설득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자재를 나르는 금곡 헬기장과 송전탑 건설 현장 곳곳에 각 언론사 기자들과 카메라가 몰렸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에게 연거푸 인사를 합니다. 제발 우리 소식을 제대로 전달해 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신문기사, 뉴스방송으로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서 또다시 좌절을 합니다. ‘외부세력’이라는 촌스러운 멘트가 또다시 흘러나옵니다. 현장에 한번이라도 방문했던 기자분이라면 귀에 닳도록 들었을 겁니다.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없으면 우리를 들어냅니다. 기자들과 카메라가 있으면 때리지도 않습니다.” 8년을 고립되어 싸웠습니다. 이제야 이 소식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기자와 카메라도 와서 찍어 줍니다. 혹여나 이 글을 읽게 될 기자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이 목소리가 온전하게 전해졌으면 합니다. 믿기 힘들지만,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진짜’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