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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2라운드다!”

“2라운드다!”

민선(상임활동가)


오늘 사무실 앞마당에 매화꽃이 펴있더군요. 근처 와우산길이 개나리꽃으로 노랗게 물들 날도 곧 오겠죠. 따뜻한 봄이 반갑습니다. 길고 춥고 눈도 많이 왔던 지난겨울은 대한문을 오가느라 바삐 보냈습니다. ‘함께 살자 농성촌’에 같이 하게 되면서요. 작년 가을 한 달간 강정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많은 현장을 가로질렀던 생명평화대행진, 11월 3일 여의도공원에서 시청광장까지 오는 발걸음을 많은 이들과 함께 하면서,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가 서로 만나고 많은 이들의 소리가 더해져 울려 퍼지면서 대행진이 만들어낸 힘을 느꼈어요. 그 한 달의 여정을 함께 했다면 참 많은 것을 배웠을 텐데 아쉬웠고, 현장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래서 대행진의 후속으로 시작된 ‘함께 살자 농성촌’ 활동을 꼭 같이 하고 싶었어요.

현안으로 연대활동에 함께 하는 경험이 저에겐 처음이었어요. 쌍용, 용산, 강정, 탈핵- 4가지 의제로 함께 하다 보니 매일매일 참 많은 일정들이 있었지요. SNS와도 거리가 멀고, 웹자보 같은 것도 전혀 만들 줄 모르는 저는 어쩌다보니 홍보팀에 배치가 되었네요. 농성촌 사람들 이야기와 이웃 농성촌들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레터, 브로셔와 엽서, 버튼 등을 함께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재능을 나눠주셔서 참 고맙고 든든했지요. 농성촌을 지키고 있다 보면 참 심심한 경우들이 많이 있었어요. 허리도 아프고, 잘 모르는 분들과 함께 있는 것이 뻘쭘하기도 하고. 그래서 재미도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담금차, 천연화장품, 티셔츠 등등 이것저것 만들기도 했고요.


▲차도 담그고, 윷놀이도 하고, 회의도 하고... ‘함께 살자 농성촌’의 다채로웠던 시간들~

농성촌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 대선은 저에게도 각별했나 봐요. 현장마다 상황이 너무 어렵다보니 대선에 별 기대는 없지만 한 숨 돌릴 틈이라도 생기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어요. 막상 대선 결과를 접했을 때는 울컥하더군요. 뭔가 치솟는 것이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농성촌에 갔어요. 몇몇 분들이 개표 방송을 같이 보면서 욕도 하고, 허탈한 웃음을 날리기도 하고, 서로 위로를 전하기도 하고……. 옆에서 가만히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2라운드다!” 사랑방 상임활동을 시작했던 2008년이 1라운드였다면, 지금부터는 제 활동의 2라운드라고 말이에요.

처음 농성 돌입을 하면서 연말까지 하기로 했던 건데,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농성촌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새 정부가 현장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도록 이 거점을 지키고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들이 모아졌지요. 강정 해군기지 예산 심의가 있던 2012년의 마지막 날, 꽁꽁 언 눈바닥에서 우리의 뜻을 전하기 위한 릴레이 100배를 하다가 새해를 맞았지요. 설날에는 같이 차례도 지내고 떡국도 먹고 윷놀이 한 판도 하고. 농성촌 천막에서의 시간과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기에, 3월 3일 화재 소식은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고 속상했습니다.

새로운 천막으로 쌍차분향소를 다시 차렸고, 천막을 더 칠 수 없도록 구청에서 가져다놓은 화분들을 이용해 문화활동가들이 쌍차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정원을 꾸며놓았습니다. 현장투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강정, 밀양 주민들 저마다의 자리로 돌아간 지금, ‘함께 살자 농성촌’의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봅니다. 처음 농성촌에 함께 하면서 사실 이런 생각도 했어요. 각자 해야 하는 것도 많은데 함께 하느라 일이 더 늘어버린 것은 아닐까? 서로의 일정에 함께 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일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겠죠. 근데 어떻다고 무 자르듯 얘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농성촌 주민들을 보면서 들었어요. 몸은 고되어도 맘은 든든한 경험들을 함께 나눈 순간들이 많은 듯해요. 대행진부터 농성촌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집회하고 행진하고 밥 먹고 잠자고 일상을 함께 했던 경험들은 서로의 의미를 각별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떨어져 지내다보니 걱정되고 보고 싶고 그래요. ‘함께' 한다는 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 농성촌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또 언제든 다시 만나게 할 힘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요, 제 활동 2라운드가 어떨지 설레기도 해요. 슬프고 화나는 일들은 아마도 무척 많겠지만, 언제 어디서든 ‘우리’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분명히 희망을 맛보고 같이 웃는 일들도 많을 것이라고 믿거든요. 대행진에서 농성촌까지, 현장과 현장의 연결고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어떤 찬란한 만남이 펼쳐질지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 나의 자리를 잘 지켜내야겠다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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