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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하루소식] “진작에 말씀하시죠” ??

가상 이야기 - 하지만 ‘실화’ 같은 상상
친구와 함께 영등포 시장에 물건을 사러왔다가 시장 한 복판에서 경찰로부터 검문 요구를 받은 김 씨. 속으로는 ‘내가 뭐 어떻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 중 나만 불심검문을 하는 거야’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도 어디선가 불심검문을 하려면 신분증을 제시하고 이유도 말해줘야 한다고 들은 기억이 난 김 씨는 경찰관에게 조심스레 검문이유가 뭔지 물으며 신분증을 요구했다. 경찰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난 후 “신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김 씨 “무슨 신고가 들어왔다는 겁니까”
    경찰 “신고가 들어왔다니까요. 신분증 제시해 주십시오”
    김 씨 “대체 무슨 신고요. 아니, 내가 도둑이라는 신고라도 있었다는 겁니까!”
    경찰 “신분증 보여주면 될 것을 왜 안 보여주고 그래요!”
    김 씨 “그러는 경찰이 어떤 신고인지 말해주면 되잖소”

무슨 일 때문인지 도통 말을 하지 않는 경찰과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화가 난 김 씨는 “검문을 거부하겠다”며 가던 길을 가려했다. 그러자 경찰은 김 씨의 손목을 부여잡고 경찰서로 함께 가자고 한다. 화들짝 놀란 김 씨의 친구, “이 사람은 김 아무갠데, 왜 잡아가는 겁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화가 난 김 씨와 김 씨의 친구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연행하는 경찰과 몸싸움도 벌어졌다. 결국 김씨의 친구는 공무집행방해, 김 씨 역시 강제로 연행돼 경찰서에 가게 됐다.

실화 - 하지만 ‘상상’ 같은 사건
지난 6월 16일 민주노총 법률원 원장 권영국 변호사와 일행이 점심식사를 하고 식당에서 나오던 길에 불심검문을 요구받으면서 벌어졌다. 정복을 입은 2명의 경찰관은 권 변호사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권 변호사는 경찰에서 우선 신분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소속을 밝히고 난 경찰은 권 변호사에게 다시 신분증을 요구했다.

    권 변호사 “검문 이유가 뭡니까?”
    경찰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권 변호사 “무슨 신고가 들어왔다는 겁니까?”
    경찰 “신고가 들어왔다니까요. 신분증 제시해 주십시오”

경찰관이 검문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자 권 변호사는 검문을 거부했고, 이에 권 변호사를 연행하려는 경찰관과 권 변호사 일행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경찰은 권 변호사 연행을 말리던 법률원 정용택 차장과 권 변호사를 모두 연행했다. 정 차장의 혐의는 공무집행방해였다. 이들은 사건이 해결(?)된 이날 5시까지 경찰에 머물러 있었다. 이날의 해결은 경찰이 ‘검문 단계에서 경찰의 실수를 인정’하고 정 차장의 공무집행방해도 애초에 경찰의 문제로 발생한 것으로 수용하고 문제삼지 않기로 하면서 ‘사과’로 마무리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일
경찰이 검문의 이유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임의동행이 아닌 강제연행인데 미란다 고지도 없는 것은 불법 행위이다. 그러나 특별히 경찰관직무집행법을 눈여겨본 사람이 아니라면 조목조목 경찰의 불법행위를 따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경찰서, 그것도 경찰관들만으로 둘러싸인 틈에서 ‘상황이 공정하게 전달되는 것’ 자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권영국 변호사도 같은 일을 경험했다.

권 변호사를 검문했던 경찰관은 “검문할 때 수배신고가 들어왔다고 말했다”며 상급자와 권 변호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권 변호사는 경찰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수배 신고’가 아니라 ‘단순히 신고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실제 그 경찰관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권 변호사가 득달같이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고, 다행히도 당시의 목격자가 경찰서에 동행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관은 ‘수배 신고’라고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다.(단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수배신고가 아니라 그냥 ‘신고’였다고 정정한 것도 아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목격자도 없고, ‘수배신고’와 ‘신고’를 엉겹결에 말의 차이정도로 넘겨 버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경찰의 ‘사과’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공무집행방해로 몰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나만의 기우는 아닐 것이다.

    경찰 “아.. 변호사님 진작에 말씀하셨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을..”
    권 변호사 “이보세요. 소장, 뭘 진작에 얘기합니까!”
    경찰 “변호사님은.. 별 것도 아닌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드신 거 잖아요.

경찰이 뭔가 아쉬워하며 하소연하듯 연신 되풀이했던 말이다. 대체 경찰은 뭘 진작에 말하라는 것일까. 검문이유가 무엇인지 경찰이 설명하기도 전에, ‘신분증도 보여주고 가방도 내 주고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시시콜콜 말하라’는 것인가? 경찰의 ‘변함 없는 태도’는 결코 ‘사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