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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인권하루소식] 정보인권과 ‘막 가자는’ 정부

기획사업반 정보인권팀에서 자원활동을 계속하다가 7월부터는 〈인권하루소식〉 취재활동을 기존에 해오던 정보인권팀과 병행하여 활동해왔다. 인권하루소식을 하면서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정보인권에 관한 기사를 몇 번 쓰면서 한국정부가 심각한 ‘정보인권불감증’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국정부는 여전히 행정효율, 수사효율, 안보효율 등을 내세우는 ‘효율이데올로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월 24일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 청문회장에서 벌어진 ‘양가아저씨’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는 정당의 요구에 ‘충실히’ 윤 후보의 생활기록부를 내어 준 교육부와 광주교육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7일에는 교육부가 ‘행정편의’를 위해 매년 약 60만 명의 학생개인정보를 병무청에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정보인권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그래서 이 란을 통해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좀 더 알리고자 한다.

교육부, 정보인권은 뒷전, 행정효율만 따져
최근 정보인권과 관련해서 가장 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곳은 바로 교육부다. NEIS 문제를 통해 정보인권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 속에서도 유독 교육부는 정보인권은 뒤로한 채 ‘행정효율’만을 부르짖고 있다. NEIS 관련해서는 서울지역 대학교 입학처장 협의회 회장단 11명이 10월 7일 가진 정기모임에서 ‘대입전형에 필요한 학생부 자료를 NEIS로 통일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선언문을 채택해 문제가 되었다. NEIS의 인권침해 가능성을 지적하는 국민의 여론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 교육정보화위원회에서 NEIS의 시행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시점에 의사정족수에도 미달된 인원으로 굳이 선언문을 채택한 것 뿐만 아니라 이날 참석한 회장단 중 한 명은 여러 차례 NEIS 관련 토론회에서 교육부 측 토론자로 참석했던 전력이 있어 교육부와의 ‘사전교감’에 대한 의혹이 일었다. 이는 교육부가 교육청을 앞세워 일선 학교들에 압력을 넣는 방식으로 NEIS를 강행하려 한 것에 이어 이번에는 대학입학처장협의회의 선언을 등에 업고 NEIS 시행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행정자치부도 검찰도 정보인권에 ‘무뇌아’
정보인권에 대해서 ‘무뇌아’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은 교육부뿐만이 아니다. 행정자치부는 최근 입법예고한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서 표면적으로는 ‘최소 수집의 원칙’, ‘정보주체사전동의원칙’ 등 정보인권에 관한 국제적 기준을 따르고 있는 듯 하지만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서는 당해 법률에서 정하는 소관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경우” 개인의 동의 없이도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기관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 “편법적인 정보수집?유통을 정당화시켜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역시 법원의 영장 없이 검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통신자료요청이 가능한 것 등 정보인권침해의 문제가 있어 지난 5월 진보네트워크는 위헌소송을 낸 바 있으며 올해 10월 9일에 민변 등 인권?사회단체들은 “위헌결정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통신자료 조회 시 영장주의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청원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개정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행 ‘통신비밀호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아 많은 인권침해사건을 만들어냈다. 가장 최근의 사건으로는 검찰이 스트라이커부대 진입투쟁과 관련,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이영훈 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데 사용한 ‘압수수색검증영장’만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상 통신제한조치에 해당하는 핸드폰 문자메시지까지 취득하는 ‘불법’을 자행한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은 정부의 현행 법률과 더불어 최근 드러나는 정부의 안일한 정보관리대책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개인정보유출의 그 말로가 정말 두려워진다.
지난 국감에서는 행정자치부가 주민등록법에 근거해 최근 3년 동안 무려 19억7천800만 건에 달하는 주민등록 전자정보를 민간기관에 제공했지만 이에 대한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이러한 사실이 사회 문제화되자, 행정자치부는 10만 건 이상 제공받은 14개 기관들에 대해서만 현장 지도?감독하고 한 차례 주민정보를 이용하는 기관 실무자들을 모아 회의를 연 것이 대책의 전부였다.

동의없이 유출되는 학생들의 개인정보들
또한 교육부는 매년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을 포함, 모든 고3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CD롬의 형태로 만들어 정시모집 때 전국 380개 대학에 배포한다. 이를 1997년부터 6년 동안 시행한 결과, 전국 모든 대학은 360만 명 이상의 생활기록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성적, 가족관계, 행동발달사항 등 각종 민감한 정보가 들어있어 유출시 큰 피해가 예상되지만 교육부는 행정편의를 위해 정보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대학에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학의 ‘양심’만을 믿고 학생들의 정보를 넘겨주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인적자원부가 10월 10일 국회 교육위 김정숙(한나라) 의원에게 제출한 `시도별 학생부 발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올 8월까지 발급된 학생부 50% 가량이 관리지침을 위반해 `기타용'으로 발급됐다. 관리지침에 따르면 학생부는 학생지도와 상급학교 진학과 관련해서만 제공할 수 있다. 관리지침은 교육부가 대학에 과도한 정보를 제공하는 빌미를 주는 등으로 정보인권침해의 문제가 있지만 교육부는 이런 관리지침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이처럼 어이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이루어져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현재 NEIS 문제의 논의를 위해 교육정보화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 중인 NEIS반대와정보인권수호를위한공동대책위원회 측의 위원들은 NEIS 문제에 앞서 교육부가 모든 학생의 정보를 CD형태로 모든 대학에 배포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며 10월 13일 교육정보화위원회 회의 후 회의장 내에서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증가되는 정보인권침해 사례
국정감사 결과에 따르면 정보통신부 산하 신고센터에 접수된 올 상반기 개인정보 침해 신고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해 7배나 증가했다. 점차적으로 정보인권에 관한 침해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 개인정보를 쉽사리 민간에 제공하면서도 민간에서의 정보보관?유통의 통제에 관해서는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는 정부의 태도는 안일하다 못해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이와 같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개인정보악용의 가능성을 더욱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 외에도 최근 정보인권 관련 이슈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원칙적이고 일관된 정보인권에 대한 기준이 없는 한 이러한 일들을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보인권과 관련해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국제 기준으로는 1980년 OECD가 발표한 ‘개인데이터의 국제유통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수집제한의 원칙, 정보내용정확성의 원칙, 목적명확화의 원칙, 이용제한의 원칙, 안전확보의 원칙, 공개의 원칙, 개인참가의 원칙, 책임의 원칙 등 각종 법률이나 시행령에서 비롯될 수 있는 정보인권 관련 문제점들을 보완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밝혀 놓았다.
정부뿐만 아니라 각종 스마트카드 사업이나 사업장에서의 노동감시 등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보인권유린 문제 역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잇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정부도 OECD가이드라인과 같은 명확하고 일관된 최소한의 정보인권 관련 기준을 설정해 인권침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