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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어쩌다 마주친, '인권'이라는 말.

어쩌다 마주친, ‘인권’이라는 말.

달꿈(자원활동가)

어떤 글을 쓸까 하다가, 얼마 전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을 보아서인지는 몰라도, ‘인권’이라는 말을 내가 처음으로 느꼈을 때의 기억을 써보기로 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말을 거의 익혔다고 생각하지만, 때로 어떤 말들은 마치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내용이 바뀌고 확장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나름 ‘인권과 평화의 대학교’를 졸업했다. 물론 그곳이 정말 인권과 평화의 대학교인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한때는 ‘인권’과 ‘평화’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홍보를 하던 이 학교를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학생들의 취업률을 자랑하고 학교가 기업처럼 경영을 잘한다는 것을 홍보하기 바빴던 다른 대학교들과는 참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내가 ‘인권’ 이란 단어가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지만, 처음으로 맘에 든다고 생각했던 때였던 같다.

그래서 나는 이 학교에 다니면서 참으로 ‘인권’ 이란 단어를 많이 입이 담았더랬다. ‘인권과 평화’ 라는 수업이 있기도 했고, 학교에 있다 보면 여기저기 이 홍보문구가 잘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 나는 “아니,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 이래도 되는 거야?” 식의 물음을 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 물음을 할 때 ‘인권’이란 단어는 참 나약했다. 어느새 너무 자주 쓰이고, 자주 보이게 된 이 단어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그냥 내용과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무척이나 나이브한 말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느새 나는 이 온순한 단어를 잘 믿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던 익숙하고 편한 대학공동체를 벗어나 처음 시작하는 사회생활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마주했다. 그것 중 하나는 바로 내가 노동자라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고민 끝에 나는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작은 인권단체에 먼저 문을 두드렸다. 솔직히, 처음 이 단체의 이름을 접했을 때, 직설적인 단어의 조합인 이 단체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한 적도 있음을 고백하지만, 나는 이제 이 단어들을 천천히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활동이 처음으로 내가 나의 권리를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이곳을 통해 여러 사람들이 모여 나의 권리,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나의 권리를 지지하며 함께 싸운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느꼈다!)

‘인권’, 문자로 존재했던 그 단어가 꽤나 역동적이고 꽤나 멋지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이 단어는 내가 관심 있었던 여러 사회문제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 20대 주거권, 등록금, 성차별 등등 이것과 인권이란 단어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감명과 더불어 더 많은 인권의제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에 인권운동사랑방도 슬금슬금 찾아왔다.

나는 지금 사회권팀에서 활동 중이다. 내 안의 노동윤리를 돌아보고, 일할 권리와 일하지 않을 권리를 고민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는 일하는 성소수자들의 자기역사쓰기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나는 백수이지만 사실 늘 일하고 있다. 요즘 나는 늘 피곤하지만, 그래도 노동권과 노동인권에 대해 말할 때 설렌다. 물론 실제 그 단어를 말해야 할 땐 가끔 슬프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더듬더듬 말하며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