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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수로보니게 여인들의 천국, 사랑방

사랑방 ‘신자유주의와 인권팀’ 활동을 한 지는 1년이 채 안됐다. 작년 4월 며칠쯤일까. 사랑방으로 조용히 찾아 들어간 소심한 나는 쭈뼛쭈뼛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보여야할지 고민에 휩싸여 사랑방 마당을 배회했다. 그러다 방해나 되지 않으려고 밖에 나가 담배를 물고 있노라니 활동가분이 조용히 다가와서 같이 담배를 물며 "안녕하세요" 한다.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끈질지게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찾아온 사랑방에서 마주치게 된 누구보다도 포근한 사람들. 그렇게 시작된 활동은 이제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에 내려온 지금에도 마음 속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처음 사랑방 문을 두드릴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첫째,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그리고 소외 받는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무겁게 느껴지고 있다는 거다. 주거권과 관련한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된 주거 빈곤층의 이야기는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이들의 언술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거움을 지니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었을까. 쌀 시장이 개방되면서 점점 살아가기가 고달파지는 농민들, 경찰의 방패에 맞고도 폭도로 몰려야 했던 우리 아저씨, 아주머니의 이야기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고 있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증언하고 있다.

둘째, 여전히 나에게 주어진 것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자원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난 사랑방 활동을 시작하기만 하면 확신에 차 운동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사랑방 활동이 실질적 운동의 전반적 상황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점점 더 선명해지는 상황 자체만으로는 운동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한 선택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좀더 부지런히 뛰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푸념이 여기저기 넘실댄다. 지금의 이 아쉬움을 훗날의 열정으로 남겨두어야지.

어느 날 성경을 뒤적이다가 ‘수로보니게 여인’이라는 인물을 만났다. 그녀는 귀신들린, 질병을 가진 아이를 돌보던 여인이다. 그녀는 당시에 기적을 일으킨다는, 메시아라는 절대적 신망을 받는 예수에게로 가서 아이의 치료를 부탁한다. 처음 아이를 살려달라는 청을 받은 예수는 갈 길이 멀다고 욕을 해대며 비천한 여인을 나무란다. 하지만 그녀는 매몰찬 예수의 힐난에 포기하지 않고 말한다. "내 아이를 살려내라고.". 결국 예수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 배운다.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만난 사랑방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많이 산다.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신봉’되는 가치들에 대해 질문하며 고민한다. 조금 더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의 테두리를 넓히기 위해 자신의 아픔이 아닐지라도 가슴에 다른 이의 아픔을 품고 산다. 밥 한술 나눠먹으면서도 즐거워하는 정겨운 아주머니들이다. 끊이지 않을 신명나는 수다를 나눌 줄 아는 마을이다. 내가 만난 사랑방은 그런 곳이었다.

내가 저런 수식어를 단 것을 알면 적잖게 ‘닭살’이라며 내 문체를 가지고 농담 던질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살다 보면 일생을 결정할 한 순간이 있다고 어느 작가는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닐지라도 가슴 깊은 곳에 남아 내 삶을 역동시킬 힘을 사랑방에서 얻어간다. 끝없는 고마움을 전하며,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