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가의 편지

내 머리 속의 인권

부모님의 우려와는 달리, 올해 무사히 대학을 마친 나는 모두의 예상대로 중등교사 임용시험에 떨어졌다. 영화에서는 낭만적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사회에서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백수’가 된 것이다. 뻔뻔하게도 아직까지 부모님의 용돈으로 생활하는 27살의 백수는 동생의 서울 생활을 핑계 삼아 현실 도피를 꿈꾼다. 동생이 서울에 있는 대안학교로 가게 된 것이다. 팔자에도 없는 서울로 왔다.

내가 인권운동사랑방(아래 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그리고 ‘짐 옮기기’ 등을 생각하고 온 내가, 글과 관련된 경험은 초등학교 일기숙제가 전부인 내가 사랑방에서 ‘기사’를 쓰게 됐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은 황당해 하셨다. 그러나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방에 매일 나오기 위해서는 ‘인권하루소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수라는 사회의 서늘한 눈길도 피할 겸, 인권운동은 어떤 것인지 알아볼 겸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원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둔 듯 하다. 계획대로 난 매일 기사를 쓰지만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백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백수인가 아닌가는 일의 유, 무가 아니라 돈의 유, 무인가 보다.

‘사람사랑’ 글은 기사처럼 쓰면 안된다는 사랑방의 당부에서 느껴지듯이 난 요즘 모든 글을 기사화하고 있다. 난데없이 기사를 쓰게 되면서 지난 한달 동안 제법 긴장했나 보다. 시간이 가도 글은 남아있고 기사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위해 쓰인다. 기사를 통해 ‘특정 정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해질까’를 생각하며 글을 쓰게 되는 긴장감. 특히 첫 기사를 쓰기 전날 난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다음날 난 ‘근로복지공단’ 이라는 곳에 가서 노동자 ‘산재불승인’이라는 것과 관련된 ‘기사’라는 것을 쓰기 위해 ‘취재’라는 것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낯선 단어들이 긴장에 부담을 더해왔다. 어떻게 보면 기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내게 ‘산재’였을지도 모른다. 취재하는 모습도 처음 걸음마를 배운 아이처럼 낯설다. 첫 날 사랑방으로 돌아와 3장의 일기가 1장의 기사로 되기까지 대략 10시간이 걸렸다. 자랑인데 아침 8시까지 기사를 쓴 적도 있다. 나중에 자연스레 알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잊으면 기사는 언젠가 완성되고, 시간을 많이 들일수록 좋은 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인권하루소식에는 사람들에게 간첩이란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벗겨주지 않는 법원, 산재 당한 노동자에게 산재불승인을 내리는 공단,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조합원을 해고시키는 회사, 아이에게 대학만을 강요하는 학교 등이 있다. 지난날 내가 모르면서 아는 척 넘어가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무관심으로 대한 것들이 기사에 있다. 인권은 특정 집단에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관계 속에 있기에 한 사람의 무관심이 주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운동 전문가에게 뱃살을 빼려한다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꾸준히 나오세요”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확인은 되지 않아도 변하고 있다고 믿으며 땀을 흘리는 것이 인권 운동과 닮았다. 돈 대신 인권을 꾸준히 생각하기 위해 내 머리 속엔 지우개가 필요하다. 지금은 사랑방이, 인권하루소식이 지우개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라는 말은 실체 없는 개념이지만 사회가 내게 가하는 힘은 너무나도 크다. 내가 가진 능력은 사회의 잣대로 평가되어지기에, 평범함에서 벗어난 특이함은 주로 특별하기보단 이상하게 여겨진다. 사회는 지금 당장 내게 무언가를 바라지만 난 언제나 결과와 한 걸음 떨어진 과정 속에 있다. 그래서 27살 자원활동은 나에게 특별하고 남에게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