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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추운 바람에 눈물이 아리던 날

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오후 1시.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지만, 빌딩의 그림자가 건너편 도보를 그늘로 드리울 만큼 해가 떨어졌다. 30분 뒤면 기자회견이 열릴 한국전력 본사 서문 앞에도 그늘은 드리어져 갔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늘 안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폴리스라인 너머로 야광빛 방한복을 입은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워놓고 출입을 통제했다. ‘질서 유지를 위해 이 선을 넘어오지 마시오.’라는 의미가 무색할 만큼 긴 끈의 띠를 이어 만든 폴리스 라인은 한전 직원들만 걸러 들여보냈다. ‘여기 선 그어놓은 곳까지 내 땅이니까, 들어오지 마!’라고 말하듯 가로막힌 상태에서 기자회견은 본래 열려고 했던 장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계단 밑으로 옮겨져야 했다. 폴리스라인을 두고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경찰들 사이에 생기는 마찰은 서로에게 반응하는 화학기호가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옥신각신하는 와중에도 한전 직원들은 경찰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가며 그들이 말하는 ‘질서 유지선’을 우회하여 통과했다.

전세버스를 대절해 올라온 밀양주민들이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기자회견 시간이 임박해갈 때까지 비슷한 광경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참가자들 주변으로 취재기자들이 모여들고, 폴리스라인 너머로 수백 명의 전경들이 분주히 이동되며 재배치되는 동안 ‘송전탑 싫어’ 글자가 새겨진 빨간 조끼를 입은 밀양 주민들이 도착했다. 밀양 주민들이 다가오자 서문 옆에 배치된 전경들은 순식간에 길가를 점령하여 통행을 차단했다. 한겨울의 농한기 동안 몸을 추슬러야 다음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민들이, 젊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농촌을 지켜가는 노인들이 도심 속의 칼바람을 맞아가며 있는 힘껏 달려와 전경들을 밀어대며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기자회견은 원래 예정했던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문 앞에서 진행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비겁한 사람은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입니다. 그건 누구 입니까? 한전입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도의적인 책임입니까? 직접적인 해결을 바란다면 한전에서는 책임을 져야합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故 유한숙 어르신 유족 분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희 아버지는 응급차에 실려 가는 도중에도 의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응급차에 함께 동승한 형사가 ‘어째서 이런 일을 하신 거냐?’고 묻자, 아버지는 ‘살아서 765가 세워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송전탑을 반대하며 음독하신 것이 분명한데도, 여러 거짓말을 보태면서 왜곡하고 덮으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 사장은 현재 한전본사에 있지 않고 여의도 국회에 있다고 합니다. 현재 한전에서 법으로 통과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송주법’(송변전설비주변지역지원법)을 한전 사장이 직접 국회의원들을 로비하려고 택시를 타고 여의도로 떠났다고 합니다. 한전 측에서는 민원관리 팀장이 대신 면담을 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765kv 송전탑 건설에 대해 대화를 하려고 온 것이지 민원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공식적인 책임을 져야할 인물들이 회피한다는 인상은 고슴도치의 가시를 건드린 행위처럼 잔뜩 사람들의 화만 돋웠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밀양주민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구의 몸을 이끌고 경찰들이 막아선 문 앞으로 다가섰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대는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일은 대체로 두 가지다. 상사의 불호령만 기다리며 다리가 돌덩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가만히 서서 시간을 죽이거나, 제 갈길 가기 위해 다가서는 사람들을 막아서서 열 받도록 만든 다음에 “당신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야!” 갖은 고함소리와 함께 욕바가지를 듣는 것이 그들의 주요 업무다. 이날도 다른 날과 크게 다르지 않는 양상을 보였다.

흐르는 눈물도 바람에 아리게 만드는 한겨울, 다 낡은 몸뚱이와 더 이상 갈라질 것도 없는 목청에서 “옘병할 놈들!” 같은 말을 내뱉으며 늙은 농부들은 손자, 아들뻘에 가까운 젊은이들과 몸을 맞대어 씨름했다. 옆에서 듣기만 해도 할머니들의 악다구니는 바늘처럼 귀를 통해 심장 가까이에 머물고 있는 양심이란 놈을 후벼 팠다. 황혼녘에 가까운 이들은 분노와 악다구니를 뒤집어 쓴 초조한 기색의 젊은이들에게 밀려나야 했다. 꼴랑 계단 두 칸을 지키기 위해 전경들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손바닥만 한 빈자리에 발만 겨우 내딛어 넘어질 듯 기울인 채, 뒷사람의 손바닥에 기대어 안간힘으로 살아있는 장벽들을 밀었다. 물리적으로도, 수적으로도 그 어느 하나 비교도 안 될 이들은 분노와 구슬픔을 내뱉으며 “비켜라!” 요구 하나만 했다. 계단 밑에 서서 한 할머니의 등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있던 나는 그저 소심할 뿐이었다. “나 좀 밀어 봐요. 밀고 들어가게 나 좀 한번 밀어 봐요.” 내가 받치고 있던 할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젊은 사람이 올라서서 들이밀어도 모자랄 판에 나이 먹고 다치면 약도 없는 어르신이 하는 그런 부탁을 어떻게 들 수가 있냐...’ 차라리 내가 다치면 모를까. 도저히 들어줄 수 없던 부탁이었다.

활동가들의 만류로 주민들은 올라섰던 계단을 내려왔다. 이윽고 사람들은 고인에게 바치는 한지로 만든 국화꽃을 서문 앞 여기저기에 매달아 놓았고, 故 유한숙 어르신 영정을 테이프로 묶어놓았다.

떠나기 전, 한 여성분이 유한숙 어른의 영정을 들고 전경들 앞에 다가섰다. 오열했다. 목 놓아 울면서 누구도 말릴 수 없을 만큼 격앙되어 “도대체 왜 막는 거야....” 인간 쇠사슬을 짠 전경들 너머 국회에 가있는 사장이 없는 한전빌딩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 “막지마라. 이놈들아… 정말로 이러지 마라…”

그날의 바람은 흐르는 눈물이 아리도록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