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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이랑”의 음악 같이 들어보실래요?

나는 자주적인 삶을 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두 번 씩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일상이란 이름 아래 먹고 마시는 것이나 잠을 자고 움직이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내게 상처를 줬던 그 사건들엔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걸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대로 우리는 그대로 우리는 얼굴을 보며 마냥 서글퍼져서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고 한땐 어쩌면 제일 즐거웠던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아니 먼 하루에 그 기억을 둘 중에 하나만 갖고 우연히 만나게 되었을 때도 그저 웃으며 인사하겠지만 사실 나는 모두 기억하고 있단다.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中

 

이랑이라는 뮤지션이 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사실 영화감독인줄은 방금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이의 음악은 꽤 들어본 것 같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사를 곱씹게 되고 귀에서 머물러지는 그이의 음악은 힘든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음악이다.

알 만한 사람들만 알던 그이의 이름이 14회 한국대중음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상 소감을 위해 연단에 올라 트로피를 경매에 붙였기 때문이다. 그이는 수상소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친구가 돈, 명예, 재미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이상 충족되지 않으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시상식이 재미도 없고 상금도 없다. 명예는 정말 감사하다.” “지난달 수입이 42만원이더라. 음원 수입이 아니라 전체 수입이다. 이번 달엔 고맙게도 96만원이다. … 그래서 여기서 상금을 주면 좋겠는데 상금이 없어서 지금 이 트로피를 팔아야겠다.”

 

이 퍼포먼스로 인해 그이는 SNS을 통해 비난을 듣기도 하고, 뮤지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나에게 이 퍼포먼스는 매우 재미있던 퍼포먼스였고, 이후 이어진 논쟁은 지금 한국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퍼포먼스 때문에 이랑이 알려졌지만 그이의 음악은 정작 여전히 알 만한 사람만 아는 음악인지라 조금은 음악을 알리고 싶었다. 앨범을 소개할 깜냥은 안 되지만 “저는 이 음악이 좋아요. 같이 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이랑의 2집 <신의 놀이>에서 가장 자주 들은 노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이다. 살다보면 자주자주 힘든 날들이 있다. 도깨비는 모든 날이 좋았다는데 난 금 나와라 뚝딱도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맘대로 가지 못해 좋았던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다.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며 ‘왜 나한테 그래’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난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너네 때문에 그렇게 못했다’고 생각한다. 괜히 분하기도 하고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물론 나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 내가 불안해 보여 도움을 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 듣게 된 노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이다. 원테이크로 녹음한 라이브를 처음 들었을 땐 좀 기분이 묘했다. 나지막한 첼로 소리와 이랑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소리를 들으며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일을 멈추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랫말 하나하나가 다 잘 들리고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자주적인 삶을 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두 번 씩 생각해보았다.” 지금 나는 얼마나 내가 선택한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왜 내 선택이지만 떠밀려서 선택했다고 생각하곤 할까….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을 다 싫어하고 힘겨워하면 되는 걸까? 여전히 그 어려움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나요.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좋은 이야기는 향기를 품고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죠.
모든 이야기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비극
비극은 제물이 흘리는 피를 받는 입구가 넓은 모양의 접시

이랑 <신의 놀이> 中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 나오기를 기다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 나오기를 기다고 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귓속에 노랫말이 떠돈다.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신의 놀이”라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마지막 노랫말은 쉽게 귓속을 떠나지 않는다. 때론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사회에서 살며 좋은 이야기를 해보려다 때론 좌절하곤 한다. 나 또한 이 사회에서 주류에 속한 집단에 훨씬 가깝다는 것, 그렇기에 좌절의 이야기를 외면하거나 이해하지 못해 누군가를 무너뜨리는 건 아닐지 무섭다. 나는 정말 세상에 조금의 균열을 내고 싶은 걸까? 혹시 나는 좋은 사람,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만족하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들이 든다.

 

노랫말이 귀에 머물러 있다가 떠날 때 나에게 남겨진 것이 고뇌나 절망이 아니었길 바란다. 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이 노랫말이 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있겠다. 이런 마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른한 오후이다. 이 오후에 나와 같이 이랑의 노래를 거쳐간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너의 오늘은 어떠했니? 어제에 비해 오늘은 조금 상처받지 않았니?”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