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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책 읽기의 어려움

6달 만에 다시 인사드리네요. 상임활동을 하고 있는 디요 입니다. 어색하게 다시 인사를 쓰는 것을 보니 아직은 상임활동가라는 정체성이 몸에 딱 맞게 느껴지진 않나봅니다. 그래도 지난 6개월 동안 꽤나 정신없이 지냈답니다. 밥 당번도 10번쯤은 했고, 공단 노동자를 만나기 위해 안산도 더 자주가고, <인권오름>에 글도 4~5번은 쓴 것 같고, 그리고 또...막상 글로 쓰려니까 많지는 않네요. 그래도 상임활동가가 되고 고무적으로 달라진 일이 있다면 책 읽기를 하게 되었다는 점 아닐까 싶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지금까지는 제가 책이라는 존재를 꺼려하거나 멀리하기 위해서 애쓰거나 그런 사람인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거든요. 오히려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간직한 쪽이 가까운 사람에 가깝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지 않을까 싶은데, 책을 읽고 싶은 마음과 그 실천이 별개라는 안타까운 사실 앞에 좌절하곤 한답니다. 그러다보니 늘 들춰본 책들은 꽤 쌓여있는데 끝까지 다 읽은 책은 손에 꼽을 만큼 적더라고요. 

왜 이렇게 책을 안 읽을까를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까지 거슬러가야 합니다. 어릴 때 저는 분명 책 읽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그림 없는 책들은 제 영역이 아니었죠. 오로지 그림책, 만화책만 열심히 보고 줄 글로 된 책들은 판타지, 무협, 연애 소설조차도 가리지 않고 읽지 않았죠. 하지만 그런 저에게 세상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1주마다 친구들끼리 읽은 책들을 나열하고 선생님께 이야기해 인정받으면 1점씩 쌓는 놀이 아닌 놀이를 해야 했던 적도 있고요.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문학책이니 자기개발서니 하는 것들은 집안 책장에 알아서 시리즈로 놓여있지만, 드래건볼 시리즈 중 단 한 권을 사기 위해선 설거지, 구두 닦아두기 등 온갖 집안일을 하며 용돈을 모으고 구매의 마지막 순간까지 허락을 받기 위해 매달려야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납니다.(덕분에 드래건볼의 내용 중 손오반이 셀을 막아내기 위해서 죽은 손오공의 기를 받아 에네르기파를 날리던 장면은 가장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 

지금 와서 거꾸로 생각하면 아무리 읽어라, 읽어라 이야기해도 단 한 장도 펴보지 않는 자식이 부모님 입장에선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겠죠.(하하) 하여튼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렇게나 책을 싫어하던 저에게 이렇게 혹독한 환경은 마음의 씨앗을 하나 남겨준 것이 아닐까하는 혐의가 있다는 것이죠. 왠지 줄 글로 쓰인 책들을 읽지 않으면 불안감, 불편함을 느끼고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어떤 마음의 씨앗 말이죠. 그렇게 어느새 20년 정도 보내고 나니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편하게 책을 읽고 필요할 때 읽고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읽기 위해 읽게 되는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왜 읽어야 하지? 라는 질문이 빠진 채 말이죠. 

그렇게 어찌어찌 책과의 불편한 동거를 하는 와중에 상임활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단번에 무슨 변화가 있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새로운 씨앗을 손에 쥐기는 한 것 같습니다. 책읽기의 필요성, 계기들이 달라지기 시작했거든요. 활동을 하다 보니 조금 더 고민을 나누고, 키워야 하겠다는 필요성, 제 부족함이 느껴졌거든요. 갈수록 깜깜해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운동을 하겠다는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인권 운동은 어떻게 가야할지 등등 고민은 막연한데 실마리를 못 찾겠는 그런 상황 말이죠. 그럴 때 권유받은 책읽기 모임이 있었거든요. 함께 모여 책을 읽는다는 것. 지금까지 그런 행위를 해본 적이 과연 있었나 싶었습니다. 물론, 중고등학교 다닐 때 모두가 같은 교과서, 교재를 보기도 했고, 대학 때 선배들이 세미나를 하자며 책을 내밀기도 했지만, 정답이 정해진 책읽기였던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나름 신입활동가라고 책 읽는 모임에 불러줘서 참석했을 땐 정말 번쩍하더라고요.  

함께 모여 고민을 나누기 위한 책읽기. 지식의 양을 늘리기 위해서도, 그래도 나는 어떤 책은 읽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도 아닌 좀 더 같이 이야기 나눌 자리를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게 되었달 까요. 그러고 나니 괜스레 ‘난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왔나?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책을 열심히 읽으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책만 읽으라 하고 함께 읽지는 않았는지 눈총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그럼에도 그들을 탓 할 수 없는 것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과 몸이 움직이는 일은 별개라는 자명한 사실이 여전히 제 발목을 잡기 때문이겠죠?(하하) 사실 이 문제는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제가 스스로 해결할 일이겠죠. 그렇지만 움직이지 않는 제 몸에게 설득력 있게 채근하며 조금 더 움직여야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는 요즘이기에 일단은 스스로를 토닥여주고 싶네요.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제 활동의 고민도 더 넓고 깊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 상임활동가의 편지 때는 조금 더 달라진 모습으로 찾아뵈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