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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회동(會動)’을 반추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2010년 사회권 팀에서 ‘청소노동자 행진’에 참여했고 현재는 『인권오름』 인쇄본 편집을 맡고 있는 권동욱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인권운동사랑방 20주년 기념 ‘회동’이 열렸지요. 얄궂게도 그날따라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때문에 행사 진행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우려가 됐지만 다행히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뿌듯했습니다. 저는 오늘 ‘회동’ 막바지 순서였던 활동가들의 합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20주년 행사에 대한 소회를 함께 나눠볼까 해요. 저희가 부른 노래는 ‘불나비’였습니다. 약 7년 전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 교내 몸짓 동아리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때 그들이 맞춰 춤췄던 노래가 ‘불나비’였는데요. 당시 꽃다지 보컬 윤미진 씨의 낭랑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운 듯한 목소리와 몸짓패들의 전투적인 율동이 어우러지면서 제 머릿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때 이후로 ‘불나비’라는 노래는 서정성을 가미한 다른 민중가요들 일부와는 달리 조금 딱딱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없는 곡으로 기억되고 있었죠. 그런데 ‘회동’을 위해 첫 합창연습을 하러 친구사이 사무실을 찾았을 때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맞춰 편곡된 ‘불나비’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처음엔 무슨 노래인지 모르는 채 흘려들으면서 잠시 땀을 식히고 있었는데, 후렴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7년 전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억이 다시 살아남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오늘 들은 ‘불나비’는 템포도 느려졌고,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비의 위태위태함을 떠올리게 하는 엇박자의 리듬들도 완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편곡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제 느낌은 이랬답니다. 예전의 ‘불나비’가 80년의 민중 혹은 80년대 후반의 노동자 주체를 상정하고 있었다면 이번의 ‘불나비’는 ‘민주화’ 이후 이러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한 변혁 운동이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고착 상태를 겪고 나서 다시 접속의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 ‘우리’들을 표상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살짝 나이가 들었다고 할까요. 이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 그래서 불을 찾아 헤매다가 불을 발견하면 단박에 뛰어드는 불나비가 아니라, 서로의 이질성 속에서 보편을 향한 실마리를 찾고 관계를 맺으면서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불나비, 이것이 제가 이번 ‘회동’을 위해서 새로이 편곡된 노래를 듣고 떠올린 불나비의 이미지입니다. 사실 머릿속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대한문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는 쉽지가 않았어요. 다만, 긴장한 나머지 가사집만 보면서 노래를 부르다가도 언뜻언뜻 앞자리에 앉아있던 분들의 표정을 스치듯 보았을 때, 그리고 그들이 함께 따라 불러주는 것을 확인했을 때, 7년 전 화려한 몸짓과 함께 했던 빠른 리듬의 ‘불나비’보다 비록 서툴고 어쩌면 단조롭게 들릴 수도 있었을 올해의 ‘불나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여서 움직인다는 의미의 회동(會動), 모이느라 지친 ‘우리’들이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숨고르기가 필요하겠지요. 저희가 함께 부른 ‘불나비’가 그런 숨고르기의 기회가 되었기를 바라면서 짧은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