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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엄마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지금도 가끔 울곤 한다. 할머니는 몇 년 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시다 돌아가셨다. 당시 일산에서 강북삼성병원까지 매일 오갔던 엄마가 몸이 많이 아팠던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치료를 받고 계신 중이셨지만 돌아가신 이유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엄마에게는 여전히 마음 아프고 할머니에게 미안하고 미안한 일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엄마는 그때가 떠오를 때마다 울컥 가슴 깊은 곳에서 아픈 마음들이 올라오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으며 광화문 현판 아래 노숙농성과 여러 집회현장에서 가족들 가까이 있게 되면서 엄마가 떠올랐다. 내 자식이, 내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구조 0명이라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이 정부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라도 기대했지만, 그조차도 끝내 무너뜨리려고 한다. 세월호 인양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더니 4월 16일 팽목항을 찾아 ‘쇼’처럼 인양하겠다고 밝힌 정부다. 인양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예전에 끝났음에도 돈 운운하며 모욕을 일삼고서는 말이다. 조사를 받아야 할 공무원들이 조사를 주도하고, 조사인력을 축소하면서 진상조사를 방해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쓰레기 정부 시행령 폐기 요구에 어떠한 답도 하지 않더니 남미 순방을 마치고는 아프다고 드러누웠단다. 그사이 재보궐 선거 결과로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모법인 특별법에 위배가 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쓰레기 정부 시행령을 결국 밀어붙였다.

2014년 4월 16일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팽목항에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청와대로 가야겠다는 가족들을 진도대교에서 막았던 경찰들은 조금의 주춤거림도 없이 가족들 앞을 가로막는다. 최종 책임이 있다는 말로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눈물 흘리고 언제든 찾아오라 말했던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목소리에 귀를 닫고 철벽같은 공권력을 앞세웠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로 헌화하러 가는 걸음들을 6중 차벽으로 꽁꽁 막은 공권력은 이제 가족들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직사하며 가격하고, 캡사이신 건을 눈을 겨냥해 쏜다.

5월 1-2일 철야 행동이 이어진 날, 새벽 안국동 사거리에 모여 있던 가족과 시민들을 경찰은 진압과정에서 분리시켰다. 차도에 섬처럼 남게 된 가족들이 지친 몸을 누인다. 그 옆으로 위태롭게 차들은 쌩쌩 지나갔다. 경찰들은 차량소통에만 신경을 썼다. 지나가는 차량에서 욕설이 들리고 시비가 붙었는데도 경찰들은 멀찌감치서 팔짱만 낄 뿐이었다. “여기서 시민들과 싸움을 붙이는 게 저들이 원하는 거다. 이러고 있지 말고 청와대로 가자.” 몇 걸음 가지 못해 다시 경찰벽에 가로막혔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몇 겹으로 쌓인 경찰벽을 밀고 방패 틈새로 엎드려 기어들어간다. “우리는 내 새끼한테 가는 게 소원인 사람들이다. 제발 비켜라.” 아버지들이 목줄을 걸고 경찰벽 앞에 섰다. 밀고 당기면서 목이 조여 위험한 상황인데도 경찰들은 꿈쩍 않는다. 주변에서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제발 푸세요.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야죠. 같이 가요.”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가운데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해 가족들이 다시 일어선다. 화장실에 다녀온 어머니가 다시 경찰방패 앞에 앉으면서 말한다. “집 지켜야지.” 아까 운 데다가 햇빛에 벌겋게 상기된 얼굴들, 그래도 다시 웃는다. 부채질을 해주는 한 아버지에게 “아이스크림 좀 사주세요.” 한 어머니의 말에 “난 사다 줄 수 있는데 우리 애 엄마 얼굴 타서 안 돼.” 이어지는 말, “맞아, 난 소중하니까.” 그렇게 함께 웃는다. 다시 한 발짝 더 내딛으려는 가족들에게 캡사이신 건을 쏘면서 끝내 막아선 경찰들을 뒤로하고 철야 행동을 함께 했던 시민들과 만나 1박 2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마음을 다지기 위해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가족들 옆에 함께 있던 시간 여러 마음이 들었다. 가족을 잃은 아픔을 보듬을 새 없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러한 아픔이 더는 없도록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낸 가족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를 드러내는 공권력 앞에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바닥일 수 있나 참담했다. 그러나 한 발짝 나아가길 주저하지 않는 가족들을 보며, 지치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건네며 순간순간을 다시 견뎌내는 가족들을 보며 오히려 큰 힘과 위안을 받기도 했다. 거짓말만 일삼고 물리력을 앞세워서 진실을 인양하라 요구하는 목소리를 가로막는 정부, 진전은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무능한 정치인들이 흘려보낸 1년의 시간 동안 가족들은 참 단단해지고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가족들 옆에서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시민들이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인간의 마음을 지켜내려는 몸짓들이다.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 가족들에게 문득문득 찾아올 순간들이 아픔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면서 다시 또 오늘 한 발짝 내딛고자 하는 가족들 곁에 함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