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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재난과 인권] 애도와 연대의 권리

-영화 <교실>,<자국>, <선언>

2014년 여름이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유가족들이 서명을 받고 농성을 하며 연일 거리에서 지낼 때다. 희생학생의 부모 한명이 말했다. “우리는 언제 유가족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우리는 언제 슬퍼할 수 있는 겁니까?” 2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애도의 말뜻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면 누구도 충분히 애도했다고 말할 수 없다. 4.16인권선언 풀뿌리토론에서 ‘슬퍼할 권리’가 적지 않게 제안된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애도는 그저 혼자 슬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죽음에는 사회적 애도가 필요하다.

애도할 권리


4.16인권선언은 ‘애도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재난참사와 같은 집단적 상실의 경험에는 애도를 위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잊으라’는 메시지, 진상규명 요구가 과도하다는 비난, 보상금 때문이 아니냐는 왜곡, 노란리본을 불온시하는 지침과 같은 것들은 애도를 가로막아왔다. 애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보면 된다. 공감하는 관계, 진실을 밝히는 노력, 책임을 묻고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함께 헤아려가는 과정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함께 찾아가는 과정과 구분될 수 없다. 영화 <자국>은 우리 곁에 남은 자국들을 찬찬히 쫓아간다. 동네 놀이터에, 분식집 벽지에, 집과 학교를 오가던 길에, 보이는 사람만 볼 수 있는 자국들이 남아있다. 단원고 교실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자국이기도 하다. <교실>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빈자리를 우리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고민을 던진다.

그러나 단원고 교실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누구도 부딪쳐본 적 없는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태준식 감독은 <교실>을 만들며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은 입장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당황하기도 했고, 유경근 집행위원장(416가족협의회)은 많은 사람들에게 서운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특별법의 수사권, 기소권도 그랬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왜 필요한지 알게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 채 정부의 방해 공작에 발목이 잡히고, 정부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조사활동이 강제 종료될 위기에 처한 지금은 누구나 알게 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숙제를 내어준다. 과거의 경험에 기대는 것만으로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사회적 애도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는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새로운 숙제들을 맨 앞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 참사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다. 그러므로 애도할 권리를 되찾고 누리는 길은 이들과 연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연대할 권리


<선언>은 우리의 시야를 세월호 너머로 확장시킨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다루는 <선언>은 해고노동자가, 장애인이, 직업병 피해 노동자가 겪어온 시간들을 통해 “수많은 세월호들의 침몰 속에서 다시 닥쳐온 재난”을 곱씹어보게 한다. 동시에 재난을 극복하는 것이 서로 말하고 듣고 함께 행동하는 연대를 통해 이루어짐을 깨닫게 한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어떻게 연대를 이뤄왔는지를 들려주었다. 2014년 국회 농성 당시 태안해병대캠프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찾아왔다. 그때만 해도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던 때였지만 유가족이라 마음이 가서 귀를 기울이는데 첫마디가 “미안합니다”였다고 한다. 아니, 아이를 잃은 부모가 왜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하나? “그때 우리가 제대로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했더라면 이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또 다른 유가족에게 유경근 집행위원장 역시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합니다. 그때 우리가 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고 함께 했더라면 해결됐을지도 모르는데.” 그 후 이전의 참사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세월호 참사가 어쩌다 일어난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게 됐다고 한다. “단 한 사람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는 사회를 목표로 싸워야겠다.” 다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태준식 감독은 “이전에 사회적 비극들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잘 못한 게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인권선언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4.16인권선언을 계속 보고 곱씹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으로서 살 권리에 관한 이 사회의 수준이 바닥까지 드러난 사건이고 기존의 권력이 만들어내는 틀을 극복하려면 공동체적 가치로 이겨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인권선언이 그 중심에 자리 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은 구체적인 매뉴얼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상황을 누구의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할지, 변화를 통해 이루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인간의 존엄은 사회의 기초다. 연대를 위해 맞잡은 손에 인권을 쥐어야 한다.

흔들리며 다부지게

4.16인권선언은 존엄에 기초한 사회를 만들 권리가 우리에게 있으니 연대하고 협력하자고 말한다. 연대는 권리를 빼앗긴 피해자를 돕는 것 이상이다. 연대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를 깨닫게 하고 아직 걸어보지 않은 길에 발을 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연대는 의무라기보다 차라리 권리다.

연대는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과는 다르다. 객석에서는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달라 싸우기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면 쉬라고 하시라. 속도나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인정하자.”라며 격려했다. 사람이 모이면 의견이고 감정이고 하나가 아니다. 그럴 때면 조바심 나기도 하고 마음을 다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서 강하다. 함께 하는 만큼 우리는 흔들릴 수 있는 자유를 얻고, 흔들리는 만큼 더 많은 곁을 만들어내며 연대를 넓힌다.

연대란 거창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질문을 앞지르듯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말했다. “우리가 무엇을 할까요, 묻는 분들이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하기 어렵지만 두세 명만 되도 할 수 있게 된다. 노란리본을 다는 것부터 시작하자.” 2주기를 지나며 기억의 힘이 강하다는 걸 더욱 깨닫게 되었다는 그는 당부한다. “세월호가 잊히는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국민이 아니라 언론이 잊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보다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하며,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흔들림을 격려하며, 조금은 더 다부지게 새로운 시간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4.16인권선언을 손에 쥐고.
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