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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학교가 성폭력 안전의 사각지대 일 수밖에 없는 이유

생각해보면,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런 기분 나쁜 남자 선생님이 꼭 있었다. ‘누구는 다리가 예쁘네’, ‘유카타를 입은 여자가 제일 귀엽네’ 하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다니는 학생부 선생, 교복 카라 안으로 얇은 나뭇잎을 집어넣는 이상한 짓을 장난이라며 웃어대는 체육선생.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황금비율의 법칙처럼 있던 사람이 가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든 늘, 그런 선생님이 학교에 없던 적은 없었다.

교원의 성폭력 및 성희롱 문제는 결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잠깐 화제 거리가 되었다가 금방 지나쳐가길 반복했다. 그리고 현장의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정보공개센터가 청구한 2010년~2015년까지 6년간 초중등교사 성범죄 징계 현황을 보면, 최근 6년간 성범죄 관련 징계 건수는 총 157건으로 1년에 26건, 1달에 2번꼴로 교사에 의해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었다.

교직원 성폭력 징계 현황

▲ 교직원 성폭력 징계 현황


 공무원 징계의 종류<br />

▲ 공무원 징계의 종류


성폭력 징계현황을 살펴보면서, 반사적으로 분노가 밀려왔다. 범죄 사실에 비해 처벌이 가벼운 사례들이 너무나 많았다. 담임선생님이 반 학생을 성추행해도 정직1월의 처분만 받거나 심지어 감봉3월에 그친 경우도 있었고, 지하철에서 몰카 범죄를 저지른 교사에게 감봉2월의 경징계를 내린 경우도, 기간제 교사를 성추행한 교장이 견책만 받은 경우도 있었다.

교육의 공간이라는 학교에서 성 폭력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밑바닥이라는 사실 자체도 문제이지만, 부적격 교사가 약한 징계를 받고 언제든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면 결국 이러한 처분의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사나 학교 운영 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학생들은 성폭력 문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판단이나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법 개정만이 아니라 학교 내 권력관계 재편이 필요

올해 1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성범죄 교사에 대한 처벌은 강화되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미성년자 및 성인 대상 성폭력 범죄 행위로 파면 또는 해임되거나 형 또는 치료감호가 선고·확정된 자는 영구적으로 임용자격이 박탈되며, 재직교원일 경우 당연 퇴직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교육공무원법 제10조의4) 이러한 제도 변화는 물론 성 범죄에 대한 인지를 높이고 그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률이 강화되는 것과 별개로, 교내에서 일어나는 성 폭력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고하게 자리 잡혀 있는 권력관계를 재편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성 추행을 일삼는 선생님을 변태라고 부르며 뒤에서 욕했지만, 한 번도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학생이 학교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존재인지 우리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이 선생님이나 학교 운영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고, 그 금기를 깨뜨렸을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대학 진학에 있어서의 불이익, 3년 동안 생활해야할 공간에서의 고통. 이런 것들뿐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입을 닫고 살면서 무사히 학교를 탈출해, 나는 대학에 가고 졸업을 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 왜 학생들 스스로 발언하고 결정할 수 없는가? 우리는 이 지점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성폭력, 혹은 그에 상응하는 교내의 폭력에 대해 무엇이 문제이고, 공동체 내의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지 논의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이며, 또 한편으로는 윤리적 교육의 과정이기도 하다.

학생이 학교 전반의 운영과 성폭력 교사의 처분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을 가질 수 없어서, 용기를 가지고 성폭력의 피해사실을 밝히더라도 미약한 처벌과 2차 피해 등으로 피해자의 인권이 무시당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학교는 ‘교육의 장’이라는 미명아래 가려진 성폭력 안전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덧붙임

김조은 님은 정보공개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