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 인권이야기

[동주의 인권이야기] 반걸음 뒤 또는 옆

진도터널을 빠져나와 5분쯤 달리다 보면 왼편에 보이는 하얀 큰 건물이 마음을 멈추게 한다. ‘진도실내체육관’이다. 2014년 11월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었다. 가족들이 체육관을 떠난 이후 팽목에 갈 때마다 눈에만 담고 지나갔다. 7월 어느 토요일, 예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차를 꺾었다. 이젠 사람의 기척도 숨결도 흐르지 않고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텅 빈 주차장과 체육관 둘레를 걷는 한 걸음마다 체육관의 기억을 담은 장면들이 되살아났다. 고통과 한숨과 토해내지 못한 피울음과 끝없는 기다림만이 일상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삶의 장면 장면들이....
그땐 아침에 눈을 떠 뭔가 모를 불안감이 몰려오면 무작정 체육관으로 달려가곤 했다. 아무 일 없으면 다행이다 싶었고, 무언가 일이 있으면 그저 발동동이며 곁을 맴돌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떨 땐 체육관을 나와 주차장을 하염없이 서성거렸고, 때론 체육관 한편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건넬 수 있는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존재하는 그 수많은 말들이 그저 무의미할 뿐이었다. 단 하나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반걸음 뒤 그리고 가끔 옆에 있는 것뿐이었다. 원래 그저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요즘 심한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을 바라보며 타들어 가는 가슴을 적셔줄 단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얼굴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본다. 그날도 그런 기다림의 날이었다. 2014년 10월 29일 아침, 부리나케 차를 몰아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가는 동안 계속해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댔다. 다들 ‘팽목 가고 있지’하면서 ‘황지현 학생이 맞아? 체육관에 계신 가족들이 많이 좋아하시겠네’ 하는 말들이었다. 체육관으로 향하는 마음이 급한 것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아마 발견 장소나 입고 있던 옷으로 보면 지현이가 맞을 것이다. 그럼 다른 가족들은 어찌하고 계실지... 다른 가족들은... 다른 가족들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줄 알면서 그저 옆에 뒤에 있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도착한 체육관은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기다림의 일상 그대로인 듯했다. ‘어~ 오늘 금요일인가? 아닌데 무슨 일이야?’ 하고 묻던 가족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현이네는 다른 가족들을 위해 초조한 마음을 숨기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애써 아무 일 없는 듯 더 힘들 기다림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아무 일 없는 듯 또 반걸음 뒤, 옆에 조용히 있었다.

철탑 위에 올라있는 일터에서 추방당한 해고자의 얼굴에서, 국가와 전체의 이름으로 삶터에서 추방당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가족들의 모습을 본다. 체육관에 들어가는 것은 가족들의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체육관은 가족들에게는 일상의 공간인 안방이자 거실이었다. 해서 매번 조심스러웠다. 문득문득 세상에 세상에 이런 안방이 있나 하고 분노가 치민다. 가족들이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추방당했다는 생각에 울분이 치밀어온다. 그런데 이곳마저 비우고 떠나야한다. 2014년 11월 11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가족들은 수중수색 중단을 결정하는 기자회견문을 울음을 씹어가며 토해냈다.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 야만적인 권력과 사회이다. 일터와 삶터를 상실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선택을 ‘자유’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 가족들은 체육관마저 떠나야 한다. 추방당한 자들의 선택... 그것은 추방이 아니라 사람임을 부정당하는 것이었다. 이젠 가끔이라도 반걸음 뒤, 옆에 사람으로 있는 것도 힘들어졌다.

체육관에서도 추방당한 가족들은 광화문 광장, 홍대 앞 등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서있고자 했다. 2015년 11월 14일 광화문 광장을 향하는 13만의 시민 대열 제일 앞에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서 있었다. 물대포를 온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여전히 그들은 길 위에 서있다. 그렇다! 세월호 가족들은 추방당한 게 아니다. 아니 추방할 수가 없다. 이 땅 어디 하나 팽목항이 아닌 곳이 있나. 이 땅 어느 곳에 머무른다 한들 체육관 아닌 곳이 있겠는가. 이 땅에 수많은 맹골수도가 생겨나는 한, 가족들은 길 위에 서있을 것이다. 이젠 가족들이 일터와 삶터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곁에 서있고자 한다.
수많은 탄원서, 집회, 기자회견 연대 요청이 쏟아진다. 탄원서에 서명한들, 집회에 참여한들 무엇이 바뀔 수 있을까? 구조와 제도,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서울시청광장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그렇게도 많은 집회를 했었는데... 별 변화가...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임을 부정당하는 그들의 반걸음 뒤 또는 바로 옆에 서있는 것이다.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승리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가야하는 길이기에... 사람 반걸음 뒤 또는 옆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사람이다.


덧붙임

동주 님은 광주인권운동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