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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기억하는 4.16] 인권선언운동, 조금이라도 달라진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의 실천

[편집인 주]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참사 당일에 벌어진 일을 복기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4.16연대는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인권선언'을 추진하며 인권으로 4.16을 기억해보자고 제안한다. 기억은 행동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는 열망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행동이 되어야 한다. <인권오름>과 <프레시안>에 매주 공동 게재되는 연재기사가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란다.


참사 피해자에게는 슬퍼하고 분노할 권리가

경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한 것이 있습니다. 참사 피해자. 2011년 여름, 춘천으로 봉사활동을 간 딸아이가 산사태 참사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벌써 4년. 조금은 안정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이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슬픔과 분노를 잘 다스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스렸다는 것은 억누르거나 참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슬프고 아프다고 소리치고 책임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아이는 졸지에,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10년 주기로 산사태가 일어났고 우리 아이들이 세 번째 산사태의 피해자였다는 것. 책임자는 명확하지 않습니까? 건축 등 전반을 책임지는 춘천시, 산 관리를 책임지는 강원도. 유족들은 춘천시장의 사과와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투쟁했습니다.
참사를 당한 유족들에게는 슬퍼할 권리, 분노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성을 찾으라는 충고는 너무나 잔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진상이 밝혀진 것도 없는데 이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살인과 같습니다. 슬퍼하고 분노할 권리가 용인되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가슴이 터져 죽을 겁니다.

피해자의 말을 믿어주고 공감해줘야

사과 한마디 안 하고, 오히려 유족들을 돈 달라고 떼쓰는 부모로 모는 이광준 춘천시장에 맞서 투쟁을 시작했지만 막막했습니다. 강원도 일간지에 조금씩 나오는 기사 말고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해 산사태 피해가 전국적 규모였음에도 우리는 강원도에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 ‘자연재해’는 책임을 져야 할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었습니다. 책임지라고 주장해야 할 피해자들의 행동도 막았습니다.
인재라고 주장하는 우리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춘천시는 입을 틀어막고 법으로 권리를 주장하라고 했지만, 강원도민들의 마음이 우리의 권리를 보장해준 것입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정치인들과 달리 유족들의 말을 들어주고 안타까움을 공유해줬기에 마무리가 가능했습니다. 강원도는 조례제정으로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던 춘천시장에게는 500원짜리 소송 끝에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춘천시장의 법적 책임은 마무리되었더라도 사회적 정치적 책임은 계속 져야 할 겁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그런다고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참사 피해자인 우리가 또 죽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사회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투쟁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를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참사는 어떠했는지 알아보면서 앞선 가족들의 행동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투쟁이 이어졌기에 ‘대형사고’가 ‘참사’로 인식되었습니다. 위로금 몇 푼으로 빠르게 정리해오던 것을 특별조례제정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참사의 책임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된 것입니다. 법, 제도 변화보다 중요한 것이 인식의 성장입니다. 안전, 참사 피해자, 참사 대응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온 것은 피해자 자신들이고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을 공감한 많은 사람들의 힘이었습니다.
인권선언도 그 변화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안전할 권리를 인권이라 인식하는 게 생소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인권을 침해당한 장본인이었습니다. 참사로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침해당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내 인권은 또 침해당했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사회에 적응하려 노력하던 나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또 인권을 침해당했습니다. 권리는 끊임없이 주장하지 않으면 보장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사회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크지 않지만 나의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416인권선언 추진단에 함께 해주세요. 추진단 신청은 http://416act.net/416declaration 에서 할 수 있습니다.

▲ 416인권선언 추진단에 함께 해주세요. 추진단 신청은 http://416act.net/416declaration 에서 할 수 있습니다.

덧붙임

정경원 님은 춘천봉사활동인하대희생자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이며, 희생자 유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