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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성판매 여성의 임신중절, 지원할 수 없다?

이룸을 비롯한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는 국가로부터 구조비를 받아 내담자들을 지원한다. 구조비 집행의 범위는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보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보호법에는 성매매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법률지원과 의료지원뿐 아니라 심리상담 등의 정서적 지원까지 가능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마련이라 구조비 집행에 있어서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첨예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상황들이 발생하곤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이룸에 임신중절과 관련된 전화가 올 때가 있다. 성매매 과정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이에 대한 임신중절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보호법에는 이와 관련된 시행규칙이 있다.

이처럼 법령에는 ‘출산 등 임신과 관련된 비용’에 대해 지원할 수 있음이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임신중절은 이에 포함될까?

성매매 현장에서는 피임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구매자에게 콘돔 사용을 요구하지만 구매자가 이를 거부할 경우 현장에서 콘돔사용에 대해 협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원치 않는 임신에 노출되기 쉽다. 이룸은 그동안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여 성매매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지원으로써 비용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출산 등 임신과 관련된 비용’에 임신중절이 포함되는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입장은 이와 달랐다. 지자체는 여가부로부터 ‘해당 법에 임신중절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원 불가함’이라는 내용을 확인하여 이에 대한 의견서를 이룸에 보내왔다. 이는 법을 매우 제한적으로 이해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부는 성매매과정에서 임신한 여성이 그 아이를 출산할 경우에만 관련 비용을 지원해 주겠다는 것인가? 이는 성매매 종사 여성이 처한 환경에 대한 몰이해와 여성의 권리를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재 임신중절에 대한 정부 시책이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임신중절을 해주는 병원을 찾기 힘들뿐더러 혹여 찾는다 해도 말도 안 되는 웃돈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혹 성매매 과정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성판매 여성은 임신중절에 드는 큰 비용을 전적으로 혼자 감당해야 한다. 임신을 하게 만든 특정 구매자를 지정하기도 힘들뿐더러 이 비용을 청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업주나 알선업자가 이 비용을 감당할 리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큰 돈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곧바로 성매매 일에 다시 뛰어들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룸은 법령에 ‘성매매 과정에서 임신한 태아의 낙태’가 명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1년부터 수정 시행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에는 ‘성폭력으로 임신한 태아의 낙태’가 가능하도록 명시되어 있어 성폭력 피해 여성은 합법적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성매매현장에서 성판매 여성이 피임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자기 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보호법에도 임신중절을 의료범위로 명시하여 이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와중에도 현실에서는 임신중절이 필요한 상황들이 발생할 것이다. 법이 개정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자체와 정부, 관련 기관이 현재의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성매매 과정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임신중절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은 실제 현장의 필요를 담아내야 한다. 보호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다. 보호법이 처음 발효된 이유는 무엇보다 성매매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그러한 취지를 잘 살려내기 위해 성매매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제 여성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송이송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