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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피해’와 ‘지원’ 사이

얼마 전 ‘여성가족부 과장과의 대화’ 자리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이런 자리는 대체로 여성단체는 ‘이 문제는 어떻게 하실겁니까!’ 라고 강하게 요구하면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쪽은 ‘노력하고 있다’ ‘고민하겠다’라는 답변을 하게 마련이다. 현장단체에서 보기엔 성매매를 그만둔 후의 직업훈련 지원비용과 기간, 주거지원 대책 등의 부분이 많이 부족하고 이뤄져야할 것들이 많은데 정부 부처의 속도는 느리게만 움직이기 때문이다. (단지 속도가 느릴 뿐, 설마 ‘의지가 부족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련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보호법)은 성판매 행위자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는 내용의 법이다. 이룸이 운영하는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도 이 보호법을 근거로 운영되고 있다. 이룸을 포함한 현장 단체들은 몇 년째 여가부를 향해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지원제도의 범위를 넓히라고 요구하고 있다(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왜 이런 지원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과정이 따라온다. 그 과정은 이 여성들이 얼마나 취약하고 자원이 없는지, 그리고 자립‧자활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증명해내라는 요구로 이어지기 쉽다. 요구를 하면서도 한편 찜찜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선언한 헌법 제34조>

①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최근 성매매피해여성에게 필요한 지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거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성매매여성을 위한 쉼터가 있지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주거로써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주거지원, 예를 들어 임대주택을 상상하게 되었다. 성매매를 그만둔 후, 여성들은 가족 자원을 비롯해서 경제적인 자원이 빈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여성들에게 임대주택을 지원하는 것은 사회복지서비스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성매매 그만두고 살기가 어려우니 집을 주시오!’ 라는 주장이 과연 먹힐는지는 차치하고라도, 임대주택을 받기 위해서는 성매매로 인해 삶이 얼마나 괴로워졌는지, ‘너 정도면 집을 줘도 되겠구나’ 흡족해하실 만한 끔찍한 피해를 입었음을 자꾸자꾸 얘기해야 될지 모른다. 가장 좋은 건 ‘피해자’에게 임대주택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자원 없는 사람들이 임대주택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상담을 하면서 만나는 여성들을 보면 필요한 지원들이 많지만, 그건 꼭 이 여성이 ‘성매매를 해서’만은 아니다. 그녀의 정체성이 오롯이 ‘성매매 여성’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고령 여성이기도 하고, 한부모이기도 하고, 비혼 여성이기도 하다. 사회복지보장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사회였다면 주장하지 않았어도 됐을 내용들을 굳이 성매매여성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따내야’ 하는 수준이다. 현장에서 실제로 지원업무를 수행할 때 제도의 한계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는 일이 생기기에 성매매단체가 주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까지? 언제까지?’라는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얼마나 밀어야 하는 걸까.

덧붙임

기용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