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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끙] 쉽게(?) 버는 돈..?

언제가 들었던 한 청량리 언니 얘기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언니는 10대 후반에 안마방에 들어갔는데 그때만 해도 딱 필요한 만큼의 돈만 모으고 나와야지, 생각했단다. 몇 달 후에 언니는 그 돈을 다 모았고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업주가 한 말. “너는 돈 맛을 봤기 때문에 여기 다시 돌아오게 될 거다. 내가 그런 애들 한 둘 본 게 아니다.” 언니는 그때만 해도 “내가 여길 왜 다시 오냐,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언니는 몇 년 후,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고 그때 그 말을 했던 업주와 마주쳤을 때 창피함에 순간적으로 몸을 피했다고 했다. 그런데 언니는 어떤 이유 때문에 다시 그 곳에 돌아가게 된 걸까. 정말 업주 말대로 ‘돈 맛’을 봤기 때문일까.

[사진출처]  megavj.tistory.com<br />

▲ [사진출처] megavj.tistory.com


‘쉽게’ 버는 돈

그렇다. 사실 성매매로 버는 돈이 시간 대비 액수가 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건만남도 그렇고, 업소도 그렇고 한 방(?)에 10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지 않는가. 시급 5000원으로 계산하면 20시간 노동에 상응하는 돈이다. 그래서인지 성판매 여성에 대한 비난 중에는 ‘쉽게 돈 벌려고 하는 정신 빠진 여자’라는 비난이 가장 크다. (이 돈이 결코 ‘쉽게’ 벌리는 돈이 아니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그렇게 번 돈이 언니들에게 머무르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대로 그 돈이 언니를 통과해서 소비되거나, 착취적인 성산업 구조 속에서 악질적인 업주나 채권자들에게 그대로 유입되는 양상이다.

착취적인 성산업 구조는 워낙 많은 책들에서 얘기되었으니, 오늘은 언니들의 소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언니들 얘기를 들을 때 가끔 화가 날 때가 있다. 이 언니들의 씀씀이가 과한 것 같을 때이다. ‘왜 꼭 택시를 타는 걸까’ ‘왜 매일 미장원에 가서 세팅을 하는 걸까’ 대체 왜!! 왜!! 왜!! ‘그 돈들 모으면 몇 백은 금방 모을 텐데, 왜 저러고 사는 걸까’하고 말이다. ‘사치하려고 몸 파는 여자’라는 세상의 비난에 대해서 화가 나는 한편, 어떤 언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비난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아 언니들한테도 신경질이 나는 것이다. 한 이루머의 경험- 예전에 내담자 여성이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하는 경찰조사 자리에 너무 화려하게 입고 명품백을 척- 들고 와서 ‘이걸 어쩌나’하고 속으로 끙~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 이런 얘길 들으면 언니들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이해가 가는 구석도 있다. 안 그래도 경찰한테 무시당할 게 뻔 한 경찰조사 자리이니 언니 딴에는 제일 화려하게 입고, 갖고 있는 것 중에 젤 좋은 것 들고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언니가 만지게 되는 큰돈을 생각하면 그만큼 소비도 커질 수밖에 없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쉽게’ 쓰는 돈

스케일은 쪼오끔 다르지만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나도 한 때 대학 졸업 직후에 ‘큰 돈’을 벌었던 적이 있다. 무려 200만원 정도의 월급! 이게 뭐가 많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30만 원 짜리 과외 2개로 매달 연명하던 내게 2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은 어마무지하게 큰돈이었다. 그리고 종종 실적에 따라 100만원 가까운 보너스가 턱턱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 나는 늘 신용카드빚에 허덕였다. 월급이야 그렇다 치고 100만원의 보너스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고 딱히 그때 장만한 비싼 기계나 옷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슬금슬금 5만원씩, 7만원씩 아무렇지 않게 긁은 돈들이 물 흐르듯 흘러나갔다. 그리고 1년 반 만에 망가진 몸으로 회사생활을 때려 쳤을 때, 내 수중엔 목돈이 남아있지 않았다.

임용고시 커트라인이 높아진 이후에 교사가 된 우등생 출신의 신입교사들이 날라리 학생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또한 만약 그때 그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상담하며 만나는 이 언니들을 나도 모르게 비난했을 것 같다. 나는 원래 꼬박꼬박 용돈 벌어, 꼬장꼬장하게 아껴 쓰는 타입이었다. 내가 만약 그 상태 그대로 이룸에 들어왔다면 ‘진짜 이 언니들 대체 왜 이러나~ 돈 좀 아껴 쓰고 그 돈 모으면 얼마나 좋나. 휴~’ 이런 생각이 쉬이 마음을 비집고 올라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은 내가 회사 생활하는 내내 우리 엄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아닌가!! 하지만 그때는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계속 그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을 위해 이 정도는 내게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쇼핑몰에서 5만 원 짜리 티셔츠를 두 세 개씩 주문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 옷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택배를 받는 찰나의 만족을 위해서.

내가 그랬듯 많은 언니들도 그럴 것 같다. 여성들을 계속 이 생활에 묶어두는 건, 성산업의 착취적인 구조와 자원의 빈곤으로 인한 것도 크지만 이런 식으로 ‘쉽게’ 큰돈을 만져보고, 그 큰돈의 일부를 펑펑 써본 경험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오히려 ‘쉽게’ 큰 액수의 돈을 만지게 해줌으로서 더욱 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이 구조도 성매매를 존속시키는 한 축인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자율과 일수 계산법, 채권 등으로 빚을 지게 해서 꼼짝 못하게 하는 거대한 한 축의 구조와 함께.

[사진출처]su1624.tistory.com<br />

▲ [사진출처]su1624.tistory.com


청량리의 그 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콧방귀를 뀌었던 성산업 현장으로 돌아가게 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십대 때 맛보아버린 짜릿한 돈의 맛. 상상할 수 없던 큰 액수의 돈이 나를 스쳐지나갔고, 그에 맞춰 부풀려진 소비의 욕망은 어느 순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소비 욕망 이외의 욕망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다른 삶’을 택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다시 돌아온 그 곳에서 그 업주를 마주쳤을 때 언니 심장이 얼마나 철렁 내려앉았을 지 짐작해보듯, 미처 듣지 못한 언니의 사연 또한 그저 짐작해볼 뿐이다.

위의 얘기를 하고나니, 마치 이 성판매 여성들이 쉽게 돈을 벌고, 사치한다는 사회의 편견에 부합하는 얘기를 한 것만 같아 마음이 쫄린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과연 실제로 쉽게 돈을 번다고만 말할 수가 있을까. 성판매 여성에 대해 ‘쉽게 돈 벌려고 하는 정신 빠진 여자’라는 비난을 접할 때마다 발끈하는 마음이 든다. 조건만남으로 일을 하는 경우, 돈을 떼먹히는 것은 일쑤이고, 무력으로 인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이 위험부담을 생각하면 이건 결코 ‘쉽게 버는 돈’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한편 업소에서 일했던 언니들의 경우, 일을 그만둔 지 몇 년이 되어도 연대보증이며 각종 기억나지도 않는 채권을 들이대는 독촉과 협박에 시달린다. 업주나 일수꾼들의 계산법을 보면 기가 찬다. 말도 안 되는 이자율하며, 지각 등에 대한 벌금 등도 상식 밖의 계산법이다. 그야말로 날도둑들이다. 이 성산업 구조에서 대체 누가 쉽게 돈을 버는 건가 생각해보라고 성판매 여성을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덧붙임

송이송 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