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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도의 인권이야기] 우리 사회에서 연장근로의 기회?

“매트릭스 영화에서 보면, 인간이 캡슐 안에 들어가 있고, 가상공간을 유지시키려고 에너지를 빼앗기는 장면 나오잖아요. 여기가 정말 그래요. 우린 전부 그 캡슐 안에 들어가 있어요. 맨날 밤 9시에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쓰러져 자기 바쁘고, 또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스마트폰 세상의 에너지원이에요.
그런데 우린 아무도 몰라요. 지하 세계에 이 사람들이 있는지… 그냥 스마트폰이 만들어 놓은 그 신비한 세상을 환호할 뿐이죠. 핸드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손이 거쳐 가는지 처음 알았어요. 여기는 정말 지하 세계에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지하 세계.”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스마트폰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카톡을 보기도 하고, 페이스북에 영상과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2013년 4분기, 세상은 또 새로운 스마트폰 전쟁에 자기의 모든 오감을 집중시킨다. 아이폰 5S, 삼성에서는 갤럭시노트3, LG G2…

그런데 그 사이 핸드폰업체 노동자들은 오늘도 또 밤을 샌다. 예고된 출시일에 차질 없이 물량을 납품하기 위해서다. 수십 명이 줄을 서서, 조립하고 끼우고, 닦아서 다음 공정으로 제품을 넘긴다. 새롭게 물량을 출시할 때면 이 노동자들은 정말 죽을 맛이다. 납품해야 할 물량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경쟁이라며, 온갖 화려한 이벤트들을 경쟁적으로 벌이는 사이, 이 노동자들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만든다. 이런 때면 한 달 내내 쉬는 날도 없다. 인천 아모텍 노동자의 사망이 남의 일만도 아닌 것이, 전쟁은 정말 이들이지 하세계의 노동자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광고전쟁은 정말로 가상공간에서의 전쟁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면 사장이 미안해할 법도 하고, 이 전쟁에 실제로 참여한 병사들―노동자들에게 크게 치하할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연장근로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고, 그만큼 임금을 더 받아가게 해주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연장근로 기회를 주는 것을 사업주들은 은혜를 베푸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소득을 늘리는 길이 연장근로 말고 무어가 있느냐는 식으로 반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업주들은 연장근로시간이 강제로 줄어들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어찌하란 말이냐는 식으로 오히려 너스레를 떤다.

지난 10월 8일 박근혜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2016년부터 주당 최장 근로를 52시간 넘기지 않도록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 경영계는 ‘노(勞)도 사(社)도 원치 않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며 더 많은 토론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 경영계가 주장하는 ‘노(勞)’의 반발이란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걱정을 지레짐작,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게 그렇게 걱정이면 임금을 올려주면 된다. 그게 그렇게 걱정이면 현 임금 수준을 보존해주면 된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냥 노동시간 단축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정작 다른 데 있다. 주당 최장 근로를 52시간 못 넘기도록 규제를 강화하는 것을 노동시간 단축인 것인 양 꾸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얻어내겠다는 실제 속셈인 것이다. 그래서 ‘노(勞)’‘를 동원한다.
그 상응하는 조치란 노사가 합의하면 10시간 추가 연장을 6개월 동안 가능하게 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초과연장근로에 대한 탈법적 운영에서 합법적 운영으로), 특례업무를 확대시키는 것일 수도 있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 도입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연장근로의 기회. 더 많은 소득의 기회. 얼마나 더 착취해야 이들은 직성이 풀릴 것인가?
덧붙임

박준도 님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