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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무더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10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다섯 명의 활동가가 일합니다. 그래서 다섯 개의 컴퓨터, 전화기가 있고 프린터기, 냉장고가 한 대씩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가끔 오는 자원활동가들이 사용하는 노트북이 두 대 있고 커피포트와 선풍기도 한 대씩 있습니다. 사무실이 푹푹 찌듯 더운 건 무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이 기계들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사무실 옆 회의실로 피신을 가곤합니다. 사무실보다 조금 더 넓은 회의실은 햇빛이 잘 들어 불을 켜지 않아도 되고 사람의 열, 기계들의 열을 덜 받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전화벨이 울릴 때 사무실로 뛰어가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요. 문제는 이런 피신상황에서도 덥다는 겁니다. 사무실온도가 32도를 찍어도 좀 더 버텨보기로 해서 아직 에어컨을 개시하지 않았지만, 유난히 땀이 많은 동료활동가의 이마를 타고 주루룩 흐르는 땀을 보면, 개시의 그날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누가 우리를 열 받게 하는가

TV, 신문에서 연일 전력수급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품의 고장과 결함으로 국내 23기의 원자력발전소 중 10기가 멈춰 있는 상태이고 무더위에 전력소비량은 계속 늘면서 언제든지 ‘블랙아웃’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력수급의 문제를 포함해 에너지와 관련한 모든 계획, 정책, 제도들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계획인 제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8월에 수립됩니다. 그 계획에는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 전력수급기본계획, 천연가스장기수급계획,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 등이 포함됩니다. 2008년 제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당시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료를 보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건국 이래 최초로 수립된 20년 단위 장기 에너지계획으로서,
② 에너지관련 다른 계획들에 대해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계획이며,
③ “저탄소, 녹색성장”을 에너지부문에서 뒷받침하고, “석유 이후의 시대”에 대한 전략적 대응을 위한 장기 에너지정책의 비전을 제시하였음
④ 또한, 그간의 안정적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과는 달리, 에너지수요 전망과 함께 강력한 절감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⑤ “환경”, “효율”, “안보” 등 정책목표를 고려한 최적의 장기 에너지 공급믹스를 도출하였음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습니다. 이렇게 위상이 높은 에너지기본계획은 어떻게 수립될까요? 정부는 '에너지법' 제 9조에 의거하여 에너지정책 및 에너지 관련 계획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소속으로 '에너지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도 이 에너지위원회에서 많은 논의가 이뤄집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에너지위원회의 구성원과 회의과정 및 내용, 예산사용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해보았더니 위원회의 명단 빼고는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에너지위원회가 국가의 중요한 에너지 관련 정책을 심의하고 조정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회의내용과 과정이 공개되면 정책결정 지연, 공정성 저해, 발언 내용에 대한 개인적 부담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산도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에 해당되어 비공개한다고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장대로 추진 중인 논의는 비공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결정된 것들에 대해서는 왜 논의과정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산이 공개되면 누구의 정당한 이익을 해한다는 걸까요? 아주 중요한 논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시민들은 몰라도 된다는 걸까요?

정부는 그동안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데 시민사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정부에서 만든 계획안 초안이 바뀐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은 계획수립 이전에 워킹그룹을 만들어 의견수렴 절차를 만들겠다고 해놓고서 에너지위원회 논의사항을 시민들에게는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위원회에서 논의한 것들이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시민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이를 에너지위원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결국엔 정부의, 정부에 의한, 정부가 원하는 대로의 에너지정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찾아온 무더위와 정부 위주의 에너지정책이 우리를 열 받게 합니다.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

정부에서 말하는 전력수급대책은 에너지절약과 원자력발전소의 필요성입니다. 이 전력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양 원자력에너지를 찬양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이유는 바로 ‘안전성’과 ‘경제성’입니다. 원전에 잦은 고장이 발생해도 안전, 하자가 있는 부품들을 납품한 비리가 발생해도 ‘안전하다’, 체르노빌과 같은 핵 재앙 사고가 바로 옆 나라에서 발생해도 우리나라 발전소는 ‘무조건 안전하다’고 합니다. 더불어 원자력만큼 싼 원료가 없고, 지금 우리나라의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것도 다 원자력 때문이라는, ‘원전의 경제성’ 주장을 합니다. 원자력은 정말 경제적인 에너지일까요?

전력통계정보시스템( http://www.kpx.or.kr/epsis/ )에서 각 연료원별 발전단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3년 현재 유연탄, 무연탄, 유류, LNG과 비교했을 때 원자력이 가장 저렴하긴 합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발전단가의 증가율도 가장 적은 편입니다.

연료원별 발전단가<br />

▲ 연료원별 발전단가


발전단가가 싸다고 하니 원자력이 정말 경제적인 에너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 발전단가가 어떻게 책정된 것인지 산출근거에 대해 (주)한국수력원자력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보았습니다.

한수원의 답변은 비공개. 영업상 비밀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비공개'라는 세 글자만 적힌 결정통지서를 보니 허무한 마음과 함께 원자력에너지가 어쩌면 경제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쑤욱 들어갔습니다.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원자력이 경제적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발전단가를 책정하는데 있어서 배제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전의 잦은 고장과 사고 발생으로 부품을 교체하는 등의 사고수습비용과, 책정은 되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발전소를 해체하는 비용과 환경복구비용, 사용후핵연료 처리비용 등을 현실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원자력에너지의 발전단가가 절대 저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 보고서 갈무리<br />

▲ 현대경제연구원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 보고서 갈무리



2년 전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고 뒷수습을 하는데 수백조원을 들이고 있는 일본의 경우, ‘발전단가 검증위원회’를 통해 지난해 원자력 발전단가가 화석연료의 93%까지 상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2009년 원자력이 화석연료보다 36%가 더 비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더 이상 원자력이 다른 연료원들보다 경제적이지 않다는 연구결과와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이후 수습비용, 환경의 파괴를 보면 원전은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원자력의 경제성과 안전성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는 시민들을 설득하려면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들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수원의 영업비밀보다 더 중요한 게 국민들의 생명권과 알권리이니까요.

유난히 빨리 온 올해 더위와 이별하는 시간은 더 길어질 거라고 합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한 이 여름을 어떻게 견뎌야할지 걱정입니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자니 전기요금이 걱정이고 안 그러자니 너무 덥고. 친구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지하철에서 밥 먹고, 노트북으로 일하는 거 어때? 종점과 종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좋은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최상위 에너지계획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탈(脫)원전정책을 펴고 있는 독일이 전력수급난을 격지 않는 것은 진짜 대안에너지에 대해 시민과 정부가 함께 논의하면서 에너지산업구조 자체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독일은 벌써 ‘탈(脫)원전=블랙아웃’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지만 독일은 에너지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에너지전환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전환은 지역의 에너지자급과 시민들의 에너지협동조합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구요. 이제 그동안 우리를 열 받게 했던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의 리그’에서 함께 에너지 정책을 만드는 일이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덧붙임

강언주 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