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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공룡트림] 대화가 필요해

필요한 건 "미안해" 한마디

자녀가 커가면서 대화 단절을 호소하는 부모가 많다. 말을 시켜도 답이 없고 무뚝뚝하고 신경질만 낸다고 걱정이다. 아이가 사춘기인가보다 하고 결론을 짓거나 엇나가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에 잔소리만 늘어난다. 폭풍 잔소리에 아이들은 또 귀를 막는다.

대부분 그런 잔소리 뒤에는 아이들이 삐뚜로 자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숨어 있다. 무언가 삐뚤게 보인다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 보도록 만드는 ‘정상’의 기준이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다. 사회가 바라는 정상성의 기준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당장 서로의 살결을 마주하고 있는 아이가 가진 감정과 상황에 귀 기울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하고 있는 것은 대화라기보다는 일방향적 훈계에 가까울 때가 많다.

부모가 갖는 공포심은 부모 개인의 것이라기보다 사회가 만든 것이다. 어린이는 이렇게 자라야 한다고 하는 온갖 기준들이 무기가 되어 부모의 감정을 흔들고, 아이의 현실을 흔들어 버린다. 그 과정에서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 고함을 치는 등 체벌을 가하면서도 그것을 정당화해 버린다. 그럴수록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때로, 어린이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만나는 어른들도 꼭 읽어야 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어린이책을 통해 어린이 입장에서 어린이가 갖는 감정들에 귀 기울이는 감수성을 키워 보는 것이다. 세상이 만드는 어떤 기준에 따라 어린이를 바라보고 평가하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감정에서 시작해 보자.

미안해, 그 한 마디
- 『고함쟁이 엄마』 (유타바우어, 비룡소, 2005)


책 제목만으로도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뜨끔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만큼 아이에게 고함을 치는 부모가 많다. 『고함쟁이 엄마』는 부모가 고함을 치는 순간, 아이들이 어떤 감정에 휩싸이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오늘 아침, 엄마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어요”로 시작한다. 엄마가 무서운 눈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꽥 소리를 지르고 아이 펭귄은 놀라서 눈이 똥그래진다. 그리고 곧 몸이 찢어져 흩어진다. 머리는 우주까지 날아가고, 몸은 바다에 떨어진다. 날개는 밀림에, 부리는 산꼭대기에, 꼬리는 거리 한가운데로 사라져 버린다.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고함을 치는 많은 이유가 있다. 유치원에 가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어, 이를 닦지 않았지, 밥을 끝까지 먹지 않았다고, 컴퓨터를 너무 오래 했다니까!! 등등. 하지만, 어린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고함친 이유를 알기가 어렵다. 부모가 어른으로서 가진 일방적인 기준일 뿐이다. 고함은 그 기준을 강제하기 위해 발휘되는 폭력적인 수단이다. 이 책은 커다란 고함이 만들어낸 공포감이 어린이에게 어떤 정서적 아픔을 주는지 보여주고 있다. 어른들은 소리 지르는 것쯤이야 큰 일로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고함 역시 폭력의 일종이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그럼, 아이 펭귄의 몸은 흩어진 채로 살 수 밖에 없나? 그렇지 않다. 펭귄 몸이 다시 하나로 꿰매진다. 실과 바늘을 든 사람은 엄마다. 아이가 다시 펭귄 모습을 되찾았을 때 엄마 펭귄이 아이를 꼭 안아 주며 말한다. “아가야, 미안해”

소리를 지른 사람이나, 고함에 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받은 사람이나 감정이 흐트러진 것을 어떻게 모아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럴 때 가장 필요한 일은 고백인 것 같다. 내가 아이에게 한 행동이 폭력이었음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안해’라는 사과다. 아이는 분명, 부모의 진심어린 고백을 받고 부모를 용서해주고 사랑해 줄 것이다.

친절한 구속
- 『네모 상자 속의 아이들』 (토니모리슨 외, 문학동네어린이, 2000)


고함치지 않고 친절하게 말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네모 상자 속의 아이들』 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미키, 넌 정말 좋은 애야.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라고 곱게 말하고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넌 여럿이 함께 지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옳은지 잘 모르는 것 같아.......어쨌든 우리들은 네 부모님하고 의논해서 결정을 내렸어. 당분간 네 자유를 빼앗기로 말이야” 이 책에 등장하는 세 아이들은 말썽을 피우고 상자 안에 가둬진다. 수요일마다 찾아오는 부모님은 예쁜 인형, 고급 오디오 세트, 새로 나온 장난감, 만화책, 딸기 케이크를 사준다. 방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넘친다. 아이들은 행복할까?

어른들은 대부분 교육을 고민할 때 무엇을 줄까만을 생각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어 그 꽃밭에서 아이들이 자라기를 바란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정원이라 할지라도 담벼락 둘러쳐져 있는 상자 속이라면 아이들이 반가울리 없다. 『네모....』 에는 “재잘 재잘 즐겁게 떠드는 앵무새들, 깡충깡충 신나게 뛰어다니는 토끼들, 그리고 갉작갉작 나무를 갉아 대는 비버들 좀 보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요? 하지만 패티와 미키와 리지는 자기 마음대로 놀 수가 없어요.” 라는 노래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어른들은 “자기 마음대로 구는 것은 진짜 자유가 아니야”라고 훈계하고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군다”는 것의 기준은 어른들의 것이다.

인권교육으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교육 끝에 이런 말을 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에요. (그럼 누구의 몸이죠?) 음.....어른들의 몸?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대로 움직이잖아요.” 자기 스스로, 자율적인 힘이 아니라 누군가의 의지와 지도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된다. 그것이 터져 나올 때 부모나 어른들은 “예의 없다”거나 “말투가 나쁘다”는 등 현상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문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한 번만이라도 너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봐 준다면 어떨까?

마음을 나누는 남다른 방법
『아빠 나 사랑해요?』 (스티븐 마이클 킹, 국민서관, 2002)


대화가 꼭 말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빠 나 사랑해요?』에 등장하는 아빠는 “아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아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종이 상자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것으로 아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기로 마음먹는다. 상자로 비행기를 만들거나 자동차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비가 오면 푹 젖어 버려도 괜찮다. 상자 장난감들이 모여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빠를 우습게 여긴다. 말을 하지 못하고 어눌하게 상자를 가지고 노는 모습이 ‘어른답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단지 아들을 위해 하기 귀찮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빠 역시 상자로 놀이 도구를 만드는 것을 즐거워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즐거움의 세계로 아이를 초대한다. 이 즐거움의 세계에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주변에서 보기에 아빠가 이상해 보이는 것도 경계를 허물고 그 밖에 나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란, 사랑이란 서로 동등해지는 것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만든다.

덧붙임

이선주 님 인권교육센터 들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