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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청소년=쯧쯧쯧?] 돈 때문이야~ 돈 때문이야~ 빈곤은 ‘돈’ 때문이야?(2)

빈곤한 처지 = 빈곤한 삶?

꽃님이는 중학생이 된 뒤 어느 때부턴가 코스프레(만화나 게임의 등장인물로 분장하여 즐기는 놀이)에 관심을 가지더니, 침울하고 무기력하던 모습에서 다시 활기가 느껴졌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소품을 구하고, 행사에 참여하면서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이 살아나며 한층 밝아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코스프레 행사에 필요한 옷과 가발을 사느라 친구에게 돈을 빌려 쓴 것이 발단이었다. 갚을 돈이 금방 생기지 않으니 약속을 해놓고도 갚지를 못해 쩔쩔매며 몇 번을 미루고, 실랑이를 하고, 결국은 다투고 ….
어느 날은 꽃님이가 아는 아이들 사이에서 물건을 전달해주려다 잃어버리는 바람에 그 값을 물어줘야 할 상황에 놓여 한바탕 난리(?)를 치르기도 했다. 또 급할 때 친구 돈을 몇 천 원씩 빌려 썼다가 갚으라는 독촉에 어머니 비상금으로 우선 갚고,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걱정에 집도 못가고 공부방에서 울고 있던 적도 있었다.

꽃님이뿐 아니라, 앞글에서도 말했듯 가난한 가정의 청소년들은 ‘돈이 없는’ 까닭으로 참으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있으며, 겪을 수 있다. 넉넉한 형편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이, 그렇지 못함으로 이러저러한 문제가 되어 불거져 나온다.

돈이 없어 가난하면 이런 문제들을 겪으며 힘들게 사는 것이 당연한 걸까? 빈곤한 형편이면 삶조차 빈곤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순간순간들

얼마 전, 지난해 초까지 내가 함께 지내던 ㄷ공부방 아이들이 공연을 한다고 해서 보러 갔다. 중등부 친구들이 직접 사회를 보면서 노래와 춤, 연극, 악기 연주, 영상들을 보여준 소박한 공연-.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제 역할에 빠져 때로 진지하고, 때로 그 시간을 함빡 즐기는 듯 신이 나 보였다. 보는 이들 역시 즐겁고 감동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그랬다.
무대에 올라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들의 공연을 보아주며 진심으로 호응하는 이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기쁘고 즐거운 것 같았다. 사실, 다섯 번째로 열린 이번 공연은 예년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줄었다. 공연장으로 빌린 동네 복지관 강당은 이전 해들의 공연장보다 무대도 객석도 훨씬 작고 소박했다. 공연 때마다 맞춰 입던 티셔츠도 올해는 입지 않았고, 뒤풀이로 맛있는 음식들을 풍성히 나눈 것도 아니었다. 정성껏 준비한 공연에 화답하는, 그마저 소박한 박수와 환호가 있었을 뿐…. 아이들은 공연 전에 티셔츠를 맞추지 않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고, 작은 공연장을 처음 보고 실망한 기색도 보였다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공연을 하는 동안 서운한 마음 같은 건 잊은 듯했다. 자유롭고 즐거워보였고, 아름답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하며 나 역시 한껏 즐겁고,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공부방에서 이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겪어온 ‘많은 순간들’도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나 공부방에나 ‘가난하다’는 삶의 조건은 늘 별다르지 않게 깔려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삶이, 아이들이 평소에 늘 ‘그 조건’과 연결되어 의식되는 것은 아니다. 돈이라든지 가난이 때때로 걸림돌이 되고, 벽이 되어 닥쳐올 때가 있지만, 또 다른 적지 않은 순간순간에 우리는 ‘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풍요롭고 넉넉하게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교사들이 공부방에서 생각하고,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들로 그런 순간들을 자꾸자꾸 만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공부방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 어떤 친구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체하도록 먹기도 한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 욕구를 해결하는 데만도 많은 비용이 드는 우리 사회, 특히 밤낮 일하느라 바쁜 부모들이 때 맞춰 아이들 밥과 반찬, 간식거리들을 제대로 챙겨주기 쉽지 않은 형편에서, 때로 이렇게 식욕을 조절하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런 경우 ‘스스로 그만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어느 정도는 이 먹는 것에 대한 욕구를 일상적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공부방에서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충분히 챙겨주려 한다. 또 간단한 간식거리를 늘 두어 배가 고플 때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이 어느 정도 되고 나면, 아이는 계속 많이 먹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나눠먹는 즐거움 같은 것을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일구어 온 소박한 경험들

ㄷ공부방에서는 이렇게 필요한 만큼 먹고, 안정적인 공간을 누리는 등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우리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아이들과 일상에서 풀어가고 녹여내려 했다. 청소년의 경우, 눈앞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여 학과 공부의 비중이 컸지만, ‘물질과 소비 중심’의 세상, 이를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에 순응만 하는 대신 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건강한 삶’이라든지 ‘진정한 행복’ 같은 다른 가치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돈 때문에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지 않는, 그것에서 좀 더 자유로운 ‘다른 삶’을 겪어보고, 느껴보고, 그려볼 수 있는 기회들을 가져본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의미 있는 가치를 선택하고 찾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아주 소박하고 크게 어렵지 않은 일들이기도 하다.

ㄷ공부방의 초등부 친구들은 학교가 일찍 끝나는 수요일이면 동네 뒷산이나 관악산, 공원들을 찾아 자연놀이를 가거나 나들이를 다녔다. 평일에 시간이 넉넉지 못한 중등부는 한 달에 한 번 놀토나 일요일에 동아리 모임을 가진다. ‘정다운’(정기적으로 다양한 운동을 함께 하는~)은 공원에 모여 축구를 하기도, 탁구를 치기도, 계곡에 가 수영을 하기도 하고, ‘싸돌아 댕기기’라는 여행 동아리는 도시락 하나씩 싸들고 서울과 서울 근교의 산들을 안 가본 곳 별로 없이 다니기도 했다. 봄이면 뒷산 진달래 꽃잎 몇 장씩 따다 화전도 부쳐 먹고, 산언저리 쑥이랑 돌나물 같은 것들을 캐 와 초고추장에 찍어 앉은자리에서 뚝딱하거나 쑥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여름방학에는 일 년 내 벼르던 들살이와 걷기여행. 초등부는 시골마을 너른 자연 속에 며칠 머물러 지내며 뛰놀고, 청소년과 교사들은 너댓새 일정으로 길 따라 강 따라 땀 흘리며 걷는다. 또 겨울여행으로 눈꽃 핀 겨울 산을 오르기도 하고, 밤에 강가 나가 쥐불도 돌려 보고….
바깥에 나가 맘껏 뛰놀다 오면, 아이들은 한층 밝고, 생기가 돌고,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몸을 풀고, 마음도 풀고, 자연의 살아있는 기운도 실컷 느끼며 함께 호흡한 까닭일 테다. 넉넉한 자연 안에서 서로 어울려 부대끼며 정을 느끼고, 즐거운 경험들을 함께 한다. 자꾸 자연을 만나면서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살아있는 아이들은, 물질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다른 차원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얼마만큼 힘든 과정도 견뎌야 하는 걷기여행과 같은 경험은 스스로 조금은 깊어지게도, 또 서로 한층 돈독하게도 한다.

보통은 교사들이 밥이나 간식을 준비하지만, 종종 아이들이 함께 해 먹기도 한다. 우리 몸과 자연을 살리는 먹을거리에 대한 공부를 하고, 두부 스테이크라든지, 시금치나물 같은 채소 반찬을 몇 가지 해 먹기도 한다. 자연놀이 시간에 뒷산 흙을 좀 퍼다 만든 스티로폼 텃밭에서 상추나 고추, 가지들이 다 자라고 달릴 때쯤이면, 그것들을 따다 한 상 차리고 둘러앉아 쌈밥을 먹는다. 2월 말쯤, ‘한 해 공부 마치는 날’은 특별히 비빔밥을 먹는 날이다. 여기저기 한 모둠씩 둘러앉아 멸치볶음, 무채김치, 김, 나물 등 집에서 싸온 반찬 한 가지씩을 한 솥에 쏟아 넣고 비벼 먹는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밥상이어도, 제 손으로 심어 가꾸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맛, 또 여럿이 같이 둘러앉아 어울려 나눠먹는 맛이 얼마나 좋은지는 먹는 아이들 표정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우리를 살리는 만들기’ 시간에는 주로 아이들 생활과 관련해 필요한 것들을 만들며, 이 활동이 어떻게 나와 이웃과 자연을 살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우리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했다. 이면지 연습장, 천 필통, 면 생리대, 아크릴 수세미, 천연염색 손수건 같은 것들을 만들어 쓰고, 공부방에 필요한 빗자루 함, 쓰레기통, 분리수거함, 우산꽂이 등을 재활용 나무를 구해와 만들었다. 뒷산에서 나뭇가지들을 주워 윷이나 주사위, 산가지 같은 놀이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무엇을 만들어 내는 그 재미와 뿌듯함은 자못 큰 것 같다. 아이들은 손을 놀리고, 일을 하는 그 시간에 매우 몰입하는 편이다. 그렇게 제 힘과 정성을 들이고 개성을 발휘해 만든 물건들은 비싸고 번듯한 것이 아니지만, 뿌듯하게 더 애착을 느끼며 쓰기도 한다.

돈과 상관없는, ‘풍요로움’을 살아가기

아이들은 ‘돈과 상관없는 데’에서 충분히 풍요롭고, 즐겁고, 재미있고,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며, 자기 존재감과 가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경험들이 일상이 되고, 그것에 대한 관심과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컴퓨터 게임이나 손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기도 한다. 노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대신 제 여건 안에서 즐겁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밝고 활기 있게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청소년들은 어린이들에 비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건이나 심리적 여유가 충분치 못하다는 게 큰 아쉬움이고, 그런 만큼 과제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 바쁘고 힘든 부모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미안함을 종종 돈으로 보상하려 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그다지 빈곤하지만은 않다. 비싼 최신형 손전화기를 사기도 하고, 적지 않은 용돈을 받아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충족감을 썩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물질로 대신할 수 없는 마음의 허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또 한편 채울수록 커지는 욕망의 모순적인 이치가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빈곤한 형편의 청소년들이 겪는 ‘돈’과 관련한 문제들은 한 가지 한 가지 들여다보아지고, 세심히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위해 어떤 사회적 구조와 환경을 만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방과 지역아동센터에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지지자가 되어, 또 함께 그 바깥으로 자리를 넓혀가며, 우리 삶을 ‘돈’과 별 상관없이 그 나름 ‘풍요롭게’ 꾸려 나가 보는 것이다. 조금씩….
덧붙임

미나리 님은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