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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과 함께하는 HIV/AIDS 행동] 인권이 없는 한국에서 열린 에이즈대회

나는 원래 ‘한국의 소수자들이 어떻게 여기에 왔을까’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구상하고, 매일매일 있었던 일을 수첩에 기록해두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바탕으로 쓰고 있지 않다. 그 기록들을 바탕으로 쓸 수 없을 정도로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이캅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지난 26일 개막식 행사에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이 시작되었을 때, 한 에이즈 감염인 활동가가 “환영은 무슨 환영이냐!”라고 항의하면서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을 생각하지 않은 것에 분노를 했다. 그는 의약품 특허로 인해 자신에게 필요한 약이 매우 비싼 가격이 되어 그 약을 복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력까지 잃게 됐고 다리에 있는 신경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가 감염인들을 생각했다면 FTA에 관심을 가지고 반대할 것이며,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복지 예산을 삭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외쳤다. 공동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같이 일어나서 진수희 장관에게 등을 돌린 채 손으로 만든 피켓을 들어보였다.

에이즈 감염인 활동가의 분노에 찬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청와대 경호원들이 폭력으로 진압했다.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나자마자 공동행동 참여자들은 뜯어 말렸고 개막식은 잠시 중단되었다. 한국 공동행동 참여자들이 개막식장을 나가자, 외국에 있는 활동가들의 지지와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이 상황을 격려하고 지지해 준 외국 활동가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8월 27일 있었던 과잉진압과 장서연 변호사가 연행되는 장면 [출처:APNSW의 활동가 Pony Glitter의 페이스북]

▲ 8월 27일 있었던 과잉진압과 장서연 변호사가 연행되는 장면 [출처:APNSW의 활동가 Pony Glitter의 페이스북]


다음날인 27일에는 한국과 외국 참여자들의 공동행동이 있었다. 이 행동은 FTA에 반대하며 벡스코 내부를 행진하는 것이었다.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을 하는 도중에 벡스코 경호원과의 마찰이 있었다. 그리고 경찰의 불법채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경찰에게 왜 사진을 찍는지 물어보았고, 사전에 우리에게 알리지 않은 점에 대한 사과와 사진 삭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불법 채증한 사실을 사과하지 않았고 끝까지 사진도 지우지 않았다. 언성이 높아지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경찰은 강제진압을 하며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항의를 하는 사람들 중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가 연행됐다. 해외 참가자들과 한국 참가자들은 경찰차가 가지 못하도록 저항했고 몇몇 활동가들은 경찰차 앞에 누웠다. 경찰은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항의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고 에이즈 감염인을 비롯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산 해운대경찰서에서는 전경 수십 명을 보냈고 그렇게 강제진압한 뒤에 변호사를 연행해갔다. 강제진압 과정에서는 경찰이 해외활동가들도 연행하려고 했다. 너나 할 것 없었다. 이 현장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여기에는 정녕 인권이라는 게 존재할까? 의문만 더 커지고 분노밖에 할 수 없었다.

외국 활동가가 경찰의 과잉진압을 저지하고 있다. [출처:APNSW의 활동가 Pony Glitter의 페이스북]

▲ 외국 활동가가 경찰의 과잉진압을 저지하고 있다. [출처:APNSW의 활동가 Pony Glitter의 페이스북]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사실 나는 에이즈에 대해서 무지했다. 아이캅을 준비하면서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많이 부족했다. 그런 내게 이번 아이캅 행사는 많은 공부가 되었다. 몇 차례의 사전 모임에서 직접 처음으로 감염인들과 여러 소수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밝힐 수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려 했는데 병원 복도에서 간호사가 “에이즈 말고 다른 데 아프신 곳 없으세요?” 라고 물어봤던 이야기들…….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FTA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 덕분에 더욱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당장 나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는 FTA는 과연 누구를 위한 협약인가.

이 대회 기간 동안 말도 안되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인권의식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아니 인권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인권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누구는 인권이 있고 누구에게는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에이즈 학술대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맨날 떠들어 대는 ‘국격’이 한 순간에 떨어진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국격’을 외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을 만들 수 있었는지 화만 날 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의 감정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내 다리에 멍이 든 것은 1주일이면 없어진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든 상처와 멍은 몇 년이 지나도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 광경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을까? 내 친구이자 동료들이 이렇게까지 멸시받고 나 또한 차별과 낙인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이건 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나를 위해 싸우고 싶다. 많은 사람들과 눈을 보며 이야기 나누며 같이 울고 웃었던 것들을 절대 잊지 않고 손잡고 연대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결속력을 잘 다질 수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용기를 가지고 이 대회에 참여하고 같이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많이 배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같은 이야기 보따리꾼이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함께하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절대 혼자가 아니다.”
덧붙임

정휘아 님은 아이캅 성노동자소위원회 위원장이며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