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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간다, 무지개 희망을 타고

연대의 버스, 2차 희망의 버스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회의를 하러 수원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신경질적으로 트위터를 업데이트하며, 초조하게 핸드폰 화면만 바라봤다. 그 때 잠깐 생각했다. 내가 지금 타고 있어야 할 버스는 이 7000번 광역버스가 아닌데.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의 날치기 노사 협의가 이루어지고, 85호 크레인을 향한 강제집행이 시작된 날이었다.

‘연대’라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한

지난 6월 11일, 첫 번째 버스가 떠날 때에는 학생인권조례의 추가서명 계획을 짜며 정신없이 지내느라 함께 할 생각도 못 했다.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의 봄을 꽃피우기 위해 함께 울고 웃으며 반년을 넘게 죽어라 달려온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의 막바지였다. 작년 10월 말부터 매일 매일 거리에서, 여러 단체들에서 8만 장이 넘는 서명을 받아왔다. 원래 하던 다른 활동들도 거의 다 중단하고 학생인권조례에 ‘올인’한 지금 상황에서 아무리 몸이 달싹거려도, 그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달려가진 못했다.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나는 ‘선택’했다. 그 나름의 ‘선택’에 대해 후회한다거나, 부끄럽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저 견디기 힘들었다. 쓸데없는 바람이지만 몸이 세 개쯤 됐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사실 ‘청소년인권활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접할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함께 무엇인가를 할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고, 활동반경이 그다지 겹치는 것도 아니라서 조금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동지’라는 단어가 조금은 부담스러운, ‘연대’라는 단어가 조금은 어색한, 나에게 노동운동은 그랬다.

하지만 그 때, 7000번 빨간 버스 안에서, 펑펑 울고 싶었다. 크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지금 이 안에, 이렇게 앉아만 있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서. 지금 이 안에, 이렇듯 평온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이 견디기 싫어서. 바로 지금, 저 곳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당신들은 뭘 하고 있냐고 승객들 한 명, 한 명을 붙잡고 물어보고 따지고 외치고 싶었다. 지금, 여기에서 왜 그렇게 편안한 표정으로 버스 의자에 기대 있는 거냐고 화내고 싶었다. 그리고, 딱 그 분노의 크기만큼 내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다. 밤을 새다시피 하며 사무실에서 서명지를 정리한 다음날에 다른 회의를 하러 수원까지 가고 있는, 정말 죽어라 바쁜 상황에서 그 모든 일정을 빼고 당장 달려가지 못한 나를 비난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그저 다른 버스 안에 앉아만 있는 내가 정말 너무 싫었다. 사람이 죽는데, 지금 사람이 죽는데.

그저 함께 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

그 때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각자의 운동이 어쩌고, 지금의 상황이 저쩌고. 지금, 내 타임라인에 글을 올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죽는 걸 볼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내가 그 사람들을 잘 아느냐, 모르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가도 그렇게 큰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내가 어떤 걸, 얼마나 큰 걸 해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이 마음이, 몸이 네다섯 개쯤 되어서 모든 곳에 나를 보내고 싶어지는 이 마음이,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뭘 할 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 마음이 내가 어색하게 생각했던 바로 그 ‘연대’였던 것 같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부담스럽지 않게 그저 함께 하고 싶어지는, 바로 그 마음이.

사무실에서 학생인권조례 서명지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을 때도, 사무실에 앉아 회의를 하고 있을 때도, 노트북을 붙잡고 일을 하고 있을 때도 항상 미안했다. 내가 지금 마시고 있는 물이,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밥이, 내가 지금 씻고 있는 이 욕실이 미안했다. 친구들하고 놀며 웃다가도, 밖에서 신나게 돌아다니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참을 수가 없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제 미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보다 조금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한다. 이 미안함을 끌어안고, 그저 한 번 달려 가보려 한다.

미안함의 자락을 걷어 희망의 무지개로

그래서 간다, 희망을 타고. 부끄러워하며 앉아있기보다는 일단은 달려 가보려고 한다. 단지 머릿수 하나 채워주는 것뿐이라고 해도. 내가 거길 가서 뭘 하냐는 자책이 든다고 해도. 그저 여기에 앉아만 있는 걸 견딜 수 없어서, 저기 저 사람들을 이 눈으로 보고 이 손으로 만져 보고 싶어서, 그래서 간다.

그리고 바란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모두가 미안해하면서, 부끄러워하면서 그저 앉아있기보다는 각자의 희망을 이 버스에 함께 실어 주기를. 다들 엉덩이가 들썩거려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어하는 그 마음을 모아, 그렇게 희망이 모여 모여, 조금 더 큰 무지개가 피어오를 수 있도록. 이번 7월 9일 출발하는 제 2차 희망의 버스에, 그리고 인권단체들의 ‘무지개 버스’에, 각자의, 모두의 ‘연대’를 그렇게 바란다.

희망을 담아 무지개 날리며 우리가 간다!

다양한 인권의 가치를 안고,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즐겁게 싸우며, 무지개빛 이야기들을 나누기 위해 인권활동가들이 2차 희망의 버스에 함께 합니다.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들, 그리고 소중한 모두가 함께, 반차별과 평화와 표현의 자유 등을 노래합니다. 무지개 난장, 인권영화 상영, 길거리 강연 등의 프로그램에 함께해주세요.


덧붙임

어쓰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