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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상승의 불난 집에 환율상승의 기름을 퍼 부운 정부

[경제위기와 인권②] 널뛰는 환율과 한국의 리만 부라더스

환율이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하고 있다. 아니 널뛰기가 아니고 롤러코스트이다. 지난 10월 16일에는 외환시장이 개장한지 30분 만에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가격이 100원이나 폭등했다. 한국의 리만 부라더스의 하나로 호칭되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호기 있게 “환율이 13일부터 안정세를 찾아갈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해졌다. 하기야 지금 제 정신 가진 사람 가운데 누가 강만수 장관의 얘기를 믿겠는가?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개장한 이후 가장 크게 환율이 요동쳤던 경우는 1997년 12월 23일의 237원 폭등이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인사가 만사”라는 그의 정책철학을 “인사가 망사”로 실현시키면서 발생한 정책실패의 완결편인 외환위기 직후이다. 당시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동교동 자택에서 경제기획원(현 재정기획부의 전신) 관료들로부터 현황보고를 들은 후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실제 보고를 받아보니 광이 텅 비어있더라”라는 발언으로 촉발된 시장반응의 귀결이었다.

환율은 계속 널뛰기

하루에 달러 가격이 100원이나 오르는 기현상은 그 해 연말인 12월 31일에도 발생했다. 그 이후 환율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소위 “좌파정부”, “경제를 망친 정부”에서는 환율이 이렇게 요동친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에서도 이번 환율 급등이 “노무현 정부의 경제실정”의 결과라고 주장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더욱 희한한 것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촉진시키겠다고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상승을 시도했던 강만수 장관이나 이를 지지했던 신문들조차도 이번 환율 폭등으로 수출이 잘 될 것이므로 성장의 호재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환율 폭등으로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사람들은 여러 계층이 있을 것이다. 기러기 아빠들에서부터 유학 간 자식들 뒤치다꺼리 하는 부모들, 수입약품으로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백혈병이나 암을 앓고 있는 환자, 수입 사료에 의존해야 하는 목축업자,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생산업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게 100원이나 급등하는 환율은 바로 생업을 포기하라는 사형선고이고, 환율의 롤러코스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파산의 위험을 동반한 깜깜한 암흑인 것이다.

저 시퍼런 미국 달러화가 어느 나라 돈인지 조차도 모르며 길가에 좌판 깔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환율폭등의 여파는 들여 닥치고 있다. 장롱 속에 변변한 달러 몇 푼도 보관하지 못하고, 그 흔하디흔한 해외여행 한 번 다녀보지도 못했고, 주식 한 장 제대로 갖지 못한 일반 서민들에게도 달러 폭등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경제에 의존성 높은 경제구조 탓

환율의 급변이 달러를 만져보지도 못한 일반서민들의 생활에 불안요인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세계경제와 촘촘하게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경제와는 더욱 더 그러하다. “미국경제가 기침하면 일본경제는 감기에 걸리고 한국경제는 폐렴에 걸린다”는 얘기가 의미하듯 한국경제의 대외 특히 대미의존도는 매우 높다. 상품 및 서비스의 교역뿐만 아니라 자본 이동의 경계선이 거의 소멸된 상태에서 환율은 상품과 자본의 이동에 가장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따라서 환율의 급등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환율의 급등을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하루에 100원이나 뛰는 환율은 불길한 징조로 부각된다.

환율은 두 나라 화폐의 교환비율이다. 한국의 원화와 미국의 달러화 사이의 교환비율이 바로 환율이다. 즉, 미화 1달러와 교환되는 한국 원화의 단위가 바로 대미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다. 우리가 보통 미화 1달러에 대해서 1,300원을 지불하면 환율은 1,300:1이라고 한다. 반면에 한국 원화 1단위와 교환되는 미국 달러의 단위로 환율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환율은 외국화폐 1단위에 대해서 지불하는 국내화폐의 단위로 표시한다. 즉, 미국 달러화라는 상품 1단위에 대해 지불하는 원화가격이 바로 환율이다. 따라서 환율이 상승(↑)하면 원화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다. 마치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이 500원에서 1,000원으로 상승하면 원화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환율의 상승(즉, 원화의 평가절하)은 수입한 상품의 원화가격을 상승시킨다. 설령 원유 1배럴의 가격이 100달러 수준에서 변하지 않더라도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상승하면 수입한 원유의 국내가격은 배럴당 10%나 증가한다. 따라서 많은 원자재를 수입하고 식품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환율의 상승은 바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원유가격이 급등할 때 강만수 장관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을 상승시킨 결과 국내물가가 급등했던 경우가 바로 이를 보여주고 있다. 원유가격 상승이라는 불난 집에 환율상승이라는 기름을 퍼 부운 것이다. 오로지 수출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돌쇠 같은 아둔함으로 말이다.

환율상승과 물가상승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잘된다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 소나타의 국내생산가격이 2,000만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00원이면 소나타는 미국에 2만 달러에 수출할 수 있다. 만약 환율이 2,000원으로 상승하면 소나타는 미국에 1만 달러 수출이 가능하다. 미국 내에서 소나타의 달러 표시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하락하니 미국 내에서 소나타는 잘 팔릴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수출은 늘어나고 경제는 성장한다. 실제로 과거 수출을 독려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수출이 부진하면 원화의 평가절하를 통하여 돌파구를 찾았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이러한 효과가 발생한 것은 1970, 80년대이다.

만약 소나타를 수입하는 미국 내에서 불황으로 인하여 미국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아 버리면 소나타의 가격이 하락했다 하더라도 소나타의 미국수출은 탄력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는 미국 내의 현대자동차 수입상들이 원화의 평가절하와 동일한 비율로 미국 내 소나타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오히려 소나타의 판매가격을 종전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원화 평가절하로 발생한 가격인하 분을 자신들의 이윤으로 챙겨버리면 소나타의 수출은 늘어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한국이 원화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로 소나타의 미국 내 가격을 낮추면 미국 자동차 생산업자들이 뒷짐 지고 가만히 있을 것인가? 미국 정부는 이를 방관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선 미국 자동차 생산업체가 발칵 뒤집어질 것이고, 한국 정부는 환율조작국의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이고 이에 따른 미국의 통상제재가 뒤따를 것이다. 현재 중국과 미국 사이에 중국 위엔화의 저평가에 따른 불협화음을 보라.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사이로 버티어 나갈 뱃장과 위상이라도 있고 2조 달러에 가까운 외환보유액이 있어 미국이 만만하게 대하기가 어렵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한미 양국의 전통적인 유대관계로 이를 용인 받을 수 있을까? 이명박-부시의 캠프 데이비드 우정으로 양해될 수 있을까? 이것이 2000년대 현재의 상황이다.

정부의 돌파이 처방이 가져올 위험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국제무역의 환경이 전혀 다르게 변한 2000년대에 호랑이 담배 먹던 1980년대의 환율정책으로 7%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경제장관을 보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하나만 알고 셋을 모르는 용감한 경제수장이나 경제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대통령이 부라더스가 되어서 설치는 어설프고 오도된 경제정책을 보노라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서민들을 천민으로 전락시키고 국민경제를 파탄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처방은 환자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은 강부자 1%를 제외한 모든 국민을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대통령의 책임이 막중하다. 인사가 망사로 귀결되지 않아야 한다. 경제를 안다고 자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아는 경제지식이 1980년대의 경제에 적합한 것인지 2008년의 경제에 적합한 것인지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 우선해야 할 일이다. 제발 헛 삽질하지 말고.

덧붙임

* 김철환 님은 아주대학교 경제학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