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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로 물구나무] 지하철역에 깔린 ‘개인정보’ 보관함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역사의 무인보관함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니다보면 잠시 맡겨놓을 곳으로 지하철역 보관함만큼 편리한 것도 없다. 그런데 지난달 말부터 서울의 지하철 1~4호선역 138곳에는 기존 무인보관함이 사라지고 ‘지하철 무인택배 보관함’(아래 ‘이지라커’)이 설치되었다.

지하철역에 설치된 ‘이지라커’

▲ 지하철역에 설치된 ‘이지라커’



이것은 보안전문회사 에스원에서 분사한 (주)에스텍서비스가 개발한 ‘무인택배시스템’으로 물품보관은 물론 택배와 등기우편물, 퀵서비스 등을 수령하고 발송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사용자가 택배로 보낼 화물을 보관함에 넣으면 지정된 택배회사로 전산 통보되고 택배회사 직원이 화물을 집하해서 목적지로 보내는 것이다. 생선·야채 등 냉장 보관이 필요한 식료품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도 있다 하니 회사의 홍보 문구처럼 “홈쇼핑을 통해 주문한 배달물품이나 생활편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꼼짝없이 기다리시는 바쁜 현대인”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 뒤에는 개인정보의 통제 불가능이라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지라커’의 이용요금은 신용카드와 휴대폰, 그리고 ‘티-머니’를 통해서만 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 등의 수령·발송 서비스를 하려다 보니 원격관리를 위해 ‘관제센터’가 필요하게 되고 이용자의 신용카드·휴대폰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이곳을 거쳐 가게 되는 것이다.

‘이지라커’의 운영 방식 [출처] 이지라커 홈페이지(www.fts-ezlocker.co.kr)

▲ ‘이지라커’의 운영 방식 [출처] 이지라커 홈페이지(www.fts-ezlocker.co.kr)



‘티-머니’ 카드 또한 ‘고급형’만 사용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보급형’과는 달리 ‘한국스마트카드’의 ‘티-마일리지 서비스’에 가입해야만 적립포인트 등을 받을 수 있어 개인정보의 보호 측면에서는 신용카드·휴대폰과 마찬가지 위험을 가지고 있다.

▲ ‘티-머니’ 카드 또한 ‘고급형’만 사용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보급형’과는 달리 ‘한국스마트카드’의 ‘티-마일리지 서비스’에 가입해야만 적립포인트 등을 받을 수 있어 개인정보의 보호 측면에서는 신용카드·휴대폰과 마찬가지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용자는 자신의 정보가 어디에 남는 것인지, 어떤 정보들이 남겨지는지, 남겨진 기록들이 어떻게 관리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또 개인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지 여부도 시스템을 설계하는 회사 측의 선의에 전적으로 맡겨지게 된다. 게다가 ‘이지라커’에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카메라도 달려있어 이용자들의 모습을 일상적으로 촬영할 수 있다. 'CCTV 녹화중‘이라는 경고판만 붙어 있을 뿐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물품을 맡기는 모습을 누가 지켜보는지, 그 영상정보가 누구의 손에 의해 언제까지 저장되는지조차 알 수 없다.



한편, ‘이지라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결제수단으로 현금을 사용할 수 없다. 아마 현금 관리에 필요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렇게 되니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이나 다른 지역 거주자의 경우 단순히 한번 물품을 보관하고 싶어도 최소한 티-머니 카드를 사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게 된다. 보관비용도 1200원~2000원으로 올라 주거 공간이 없어 낮 시간에 짐을 보관하기 위해 지하철 보관함을 이용하는 노숙인은 ‘이지라커’로부터 배제될 공산이 크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지하철 1~4호선을 이용한 사람은 7억2천만명이고 하루 평균 이용자도 400만명에 달했다. 어떤 사람에게 ‘이지라커’는 이름처럼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편리함을 경계로 자신의 개인정보가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볼모로 편리함을 제공하는 새로운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 곳곳에서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