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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교는 미쳤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이 되었다.

4.14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미학혁명)’ 청소년인권 집회를 무사히 끝마치고

학교는 여전히 미쳤고

새벽이 오는 소리 눈을 비비고 일어나 곁에 잠든 너의 얼굴 보면서 힘을 내야지. 절대 쓰러질 순 없어, 그런 마음으로 하룰 시작하는데. (마야, <나를 외치다> 노래 중에서)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홍보를 위해 중고등학교 등교시간에 맞춰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저 노래를 되뇌면서 자기최면을 걸어야 했다. “힘을 내야지. 절대 쓰러질 순 없어.” 새벽녘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5시 반, 혹은 6시. 비몽사몽 상태인 강아지들과 편하게 자고 있는 룸메이트의 얼굴을 보면서, 이거야말로 학교가 미쳤다는 증거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다. ‘미학혁명’ 홍보를 가는 전날이면 홍보 갈 학교들 등교시간 하나에 일희일비했다.
2주 동안 학교를 돌아다니며 홍보를 했는데, 홍보할 때 학교 교사들이 나와서 “우리 학교가 왜 미친 학교냐”며 따지고, “미성숙한 애들한테 이런 거 나눠주면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호통치고…정말 쌩 난리를 쳤다. 행사 홍보 일정 중에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내시위가 발생해서 지원 나갔던 서울 광양중에서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입을 모아 학생들 선동하지 말라고 하며, 내가 골수운동권에다 위험한 사람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고 했다. 또 인천 산곡중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체벌과 강제이발 등을 현장 조사해서 언론에 발표하자, ‘학부모’라는 한 사람이 전화해 “사랑의 매는 당연한 것”이라며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문제아가 많이 생긴다고 항의했다. 경찰은 또 경찰 나름대로 행사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에 대해 광고물관리법 위반이니 뭐니 하며 교사들이 싫어하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역시, 학교는, 미쳤다. 2005년, 아침 7시 20분인 등교시간에 저항해 즉석 시위를 했던 그 무렵, 신문부 자치 신문에 투고한 글이 검열로 삭제되고, 학생인권 집회 홍보물을 한 고등학교 앞에서 나눠주다가 교사가 소리 지르면서 쫓아와 택시 타고 도망쳤던 그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바람이 불었고

4월 14일,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미학혁명)> 집회가 있던 당일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부는 바람에 참가자들이 즉석에서 쓴 피켓이 휘날렸고, “두발용의복장 전면자유”, “체벌욕설폭력 당장 그만”, “살인입시 즉시폐지”, “학교에도 민주주의를”, “학교가 제정신 차리는 그날을 위해” 등의 내용이 적힌 깃발이 휘날렸고, 우리들이 외친 구호는 바람을 타고 차도를 넘어 교육부까지 날아갔다. “별로 심한 인권침해 사례도 없구만” 같은 헛소리나 하면서 행사장 주위를 배회하던 장학사들에게는 그 구호 소리가 똑똑히 들렸으려나?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


<꿈찾기>와 <희망은 있다> 노래에 맞춘 청소년들의 몸짓(율동) 공연도, 기타 연주도 모두 도중에 음향장비 등의 이유로 ‘삑사리’가 한두 번 났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마음속으로 항상 그려온 ‘생기 있고 활력 있는 집회’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따스한 봄볕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모인 이들 모두가 각자의 절박한 ‘바람(희망)’을 품고 왔고, 그것에 솔직했기 때문에 그날의 집회는 그 어느 집회보다 즐거웠다.

“복도에서 뛰었다고 잡아서 패는데, 진짜……. 두발도 그래요. 왜 우리 인권인데 함부로 자릅니까?”
“압수는 경찰도 영장 없이 함부로 못하는데 휴대폰을 왜 맘대로 뺏어 가냐구요?”
“학부모, 교사, 학생이 협의해서 두발규정 정하라는 거, 그거 솔직히 학부모랑 교사랑 짜고 청소년 다굴치는 거예요!
“시위 같은 거 하지 말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만 하라고 하는데, 지네부터 민주적으로 하라 그래요!”
“공부 못하면 왜 제대로 교육도 못 받냐구요!”

광화문 KT 앞 좁은 인도에서, 그리고 교육부 앞에서 청소년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환호와 호응이 쏟아졌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우리가 고백하고 싶었던 우리의 소망들. “너흰 아직 어려서 안돼!”,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다 너흴 위한 거야!”, “닥치고 공부나 해!”라고 쓰인 학교 모형을 한 방에 쓰러뜨리고 교육부를 향해 행진하며 구호를 외칠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던 나는 결국 교육부 앞에서 자유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교육부로 행진하는 청소년들

▲ 교육부로 행진하는 청소년들


교육부 앞에서 우리의 분노와 요구를 담아 쓰레기봉투에 풍선들을 넣어 교육부로 담 넘어로 넘기려고 하자(교육부는 쓰레기통이다!) 경찰은 “오물투기, 업무방해”라며 우리를 제지하려고 했다. 경찰은 행사 시작 전부터 “신고하지 않은 시위 물품은 불법”이라며 우리들의 소망을 규제하고 검열하려고 했지만 청소년들은 그것을 당당히 거부했다. 청소년들은 방패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려는 전경들을 향해 오히려 “경찰 아저씨들은 청소년 때 안 놀았냐구요!”라고 외치며 항의했다.

요구를 적은 풍선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거대한 쓰레기통인 교육부로 넘기는 청소년

▲ 요구를 적은 풍선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거대한 쓰레기통인 교육부로 넘기는 청소년


‘미학혁명’ 집회는 청소년들의 솔직한 소망들이 자유롭게 발산된 자리였기 때문에 활력으로 가득 찼다. 청소년인권을 주제로 사상 처음으로 교육부 앞까지 행진해서 간 집회. 그것도 △두발용의복장 전면자유화 △체벌폭언폭력 당장 그만 △휴대폰 등 소지품 검사 압수 폐지 △입시살인 입시신분제 중단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와 자치권 등 학교 민주주의와 같은 전례 없이 급진적인 요구들을 내건 집회가 좋은 분위기 속에 잘 치러진 것은 우리 모두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공식적이고 예의바른 언어’, ‘정중한 논리’ 그런 것들에 갇히지 않고 나오는 우리의 솔직한 소망들은 얼마나 뜨겁고 힘 있었던지. 나는 눈물을 흘리며 <청소년인권활동 안내서>를 나눠주는 동안 미친 학교에 불 변화의 따스한 바람을 상상했다.
덧붙임

유윤종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