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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의 인권이야기] 국제연대운동에서 버려야 할 것들

한미 FTA 협상이 막바지로 갈수록 FTA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넓은 도로 위를 질주하는 투쟁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개개인 스스로 그 역사적 순간을 자각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열기를 함께 느껴본 사람들이라면 새로운 역사의 무대로 뛰쳐나가는 민중들의 주체적 투쟁이었다는 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에 급급한 나머지 그저 손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FTA 협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매국이고 망국”이라는 말이 난무하면서, “국익의 마지노선을 뚫어주는 것”, “철저한 손익계산이 필요할 것” 등의 주장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들은 한미 FTA에 반대하는 우리들의 보편적 관점과 태도를 어떻게 구성하고 성립시킬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만약 ‘퍼주기식’ 불평등 협상이 아니라 ‘퍼오기식’ 불평등 협상이라면 어땠을까?

2003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집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을 미국 군대의 총알받이로 내보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집회장을 가득 메울 때의 아찔했던 기억은 오래도록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리고 수년 동안 반전운동에 몸 담아오면서 이라크 민중의 편에서 전쟁의 야만성과 부당성에 반대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파병에 반대하는 주류 논리 중 하나로 ‘경제 국익론’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음을 지켜보았다. 국가의 문턱을 넘어서는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계산이 앞서는 우리의 모습은 이렇게 배타적이면서도 자기 이익의 이해관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곤 했던 것 같다.

더불어 국내 이주노동자들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가 발생하고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3D업종에 종사하며 궂은일을 도맡는 분들’을 고마워해야지 왜 내쫓으려 하냐는 식의 내용으로 채워진 선전물들이 등장했다. 인간으로서 이주노동자들이 당연히 요구해야 할 권리들이 마치 경제적 보상으로 덧씌워질 수 있는 위험한 주장이어서 마음이 답답했다.

‘인권’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는 진보진영조차 ‘국익’ 또는 ‘자본의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논리에 꼼짝없이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이 사회에서 ‘우리’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집단의 질서는 또 어찌나 강력한지. 나아가 ‘우리’의 권리가 또 다른 집단의 소외와 차별을 전제로 정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거리다.

한미 FTA든 이라크 파병이든 이 모든 것들은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민중들이 더 소외받고 억압받는 현실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크게 볼 때에는 전세계 제국주의적 질서로 편입됨으로써 우리 역시 다른 집단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경쟁자가 되는 길목으로 들어서게 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민중들 간의 국제적 연대를 고민하고 있는 나는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 협정 결과 발표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소위 ‘우리 민족’과 자본의 이해관계가 FTA 협상에서 얼마나 관철되었는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 FTA 반대 투쟁에 동참하면서, 전지구적으로 장악되고 있는 일방적인 힘의 질서를 거부하고 바꾸어가기 위해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것이며 누구와 연대의 삶을 나눌 것인가 라는 고민이 깊어지게 되었다. 사회 속에서 서로의 가치가 충돌할 때 주로 신속하면서도 간편한 ‘합리성’의 추구로 문제가 ‘해결’되지만, 때로 그것은 비소외적이고 비차별적인 지구적 관점의 필요성을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

국제연대운동을 하면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어렵고 조심스럽지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해야 할 거리이다. 무엇보다 너와 나를 가르는 집단의 무장화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손익으로 인한 합리화의 추구가 아니라 문화적 인종적 환경적 사회적으로 국제주의적 연대를 확장할 수 있는 시야를 확장시켜가야 할 것이다.
덧붙임

지은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