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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 내 삶의 불복종

채식,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

[기획연재 - 내 삶의 불복종 ⑦] 육식을 거부한다

<편집인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김새만큼이나 참 다양하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거부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가령,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정보의 누출 우려 때문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 이마트에 가지 않는 사람, 자가용 차를 타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에서는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듯,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소통의 힘을 믿는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런 운동은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들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 당신에게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그저 묵묵히 실천하며 나지막히 읊조리고 있는 우리 옆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살기 위해서 육식을 거부한다

살기 위해선 뭔가 먹어야만 하죠. 결국 먹는 문제는 ‘사는 것’에 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먹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라서 중요성에 비해, 그것 자체를 문제 삼거나 하지는 않게 되는 거 같아요. 모든 일상적인 것들이 그러하듯이.

1년 전에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1년 전에는 육식에 경도된 지배문화/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면서 채식을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도, 채식을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되는 것일까 의심스러웠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과연 저 거대한 (축산)자본에 어떤 공격이 되는 걸까? 무엇보다, 어떤 이들은 선택할 음식조차도 없어 고통받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선택권이 없을 수도 있는 세상인데. 내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렇지만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는 것들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일상의 전복이 너무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일단 시작해보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밥상머리 커밍아웃

처음에는 채식을 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스스로가 채식이라는 실천 방법에 대해서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때라서 더욱 그랬겠지만, 하루 세 끼 먹는 시간마다 ‘나는 무엇을 먹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은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밥 먹을 때마다 자신이 소수자임을 인식하는 것도 힘들지만, 내 존재 자체로 불편함을 느끼고, 나 자체가 그들에게 정치적 공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는 게 힘들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그것을 피해 혼자 먹기도 했고, 또 사람들과 밥 먹다 말고 뾰족하게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처받았지요. 나는 그들의 ‘배려’도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소수자라는 이유로 밥 먹을 때마다 타인의 배려와 용인이 있어야 하다니 하면서 억울해 했습니다. 그러다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실천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들을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이유들

미래의 ‘고기’를 키우기 위한 땅을 만들려고 열대 우림을 파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대규모의 농장을 만들기 위해 원래 살고 있던 그 땅의 주인들을 몰아내거나 말살시키거나 착취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지하수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죽여서 먹을) 동물을 먹이는데 사용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고기’를 생산할 동물들을 먹이려고 곡물을 대량 생산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곡물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 육식을 거부합니다. 육식은 지구 생태계의 종 다양성에서부터 문화 다양성까지 말살하기 때문에 거부합니다. 그리고 ‘암컷’을 보호하기 위해서 육식을 거부합니다. 육식지배 사회에서 동물의 암컷들은 죽임을 당해 고기가 되는 것은 물론 고기를 재생산하기 위한 능력으로 인해 착취당하며, 그 재생산 능력으로 인해 평생 대리 유모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이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인간 ‘암컷’들에게도 해당하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죠. 나는 여성이 재생산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먹는 것은 자본주의뿐 아니라 가부장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착취하는 것에 나는 반대하기에, 인간이 ‘비인간’인 것들을 모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도 반대합니다.

세계 최고의 적 “귀찮다”를 조금씩 극복할 수 있어

또한 채식을 한다는 것은 ‘귀차니즘’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오면 식사시간에 사람들이 묻습니다. “귀찮지 않아요?” 야참으로 라면을 끓여 먹지 않고 국수를 삶고 있으면 엄마가 묻습니다. “귀찮지도 않냐?” 누군가 과자를 권했을 때도 일단 성분 표시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같은 질문이 날아오지요. 그런데 어느 날 깨닫고 보니 나는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먹을거리를 만들고, 그런 기술을 익히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고 쉽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파괴하고,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채식은 나를 자립적이게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를 매일 성찰하는 것은 일상을 바꾸는 정치이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는 실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채식을 합니다.

* 글 곳곳에 채식과 육식거부를 섞어서 썼습니다. 채식은 식물만 먹겠다는 의미보다는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하는 것이니까요. 즉 고기만 아니라면 채소/곡물 등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가 문제인거죠. 지금은 일단 육식을 거부하고 있지만, 채식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지 동물을 먹지 않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먹는 것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대량 생산되는 곡물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임

달군 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